한국일보

선물

2008-11-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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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에서 국제교육센터의 소장을 뽑는 회의가 있었다. 시작 전부터 열서너 명의 교수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수많은 후보자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의장인 교육대 학장이 들어왔다. 그녀는 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펼쳐 놓으니 자주색 숄과 다기였다. “한 후보자한테서 온 선물이에요. 타일랜드를 여행했는데 우리한테 선물을 하고 싶었대요” 그녀는 장식용 팔찌와 녹색, 적색 카레 봉지들을 더 꺼냈다. “물론 우리는 선물을 받을 수 없으니 보내지 말라고 했죠. 그랬는데도 이렇게 보냈네요” 그녀는 ‘자메이카 산 절크 양념’ 병도 꺼냈다.

우리 모두는 난감한 웃음을 터뜨렸다. 선물이라니? 의장이 다시 말했다. “그 사람 말로는 자기네들은 취업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하는 사람한테 선물을 보낸다는군요. 자기네 관습이라니까 더는 못 막겠더라구요.”
자기네 관습? 그는 이집트 사람이다. 아무리 관습이라 해도, 이집트 사람이 타일랜드를 여행하면서 자메이카 양념을 사서 자기에게 일자리를 줄까 고려중인 중서부 미국인들한테 보냈다는 건 좀 상상 외의 일이다.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린 그 선물들을 교수들이 학교 대표로 해외여행하면서 받는 선물들을 모아 전시하는 국제학생센터의 장롱에 넣고 말았다.

“근데, 이 카레 봉지들은 어쩌죠?” “케빈 한테 줘요” 모두 동의했다. 냉큼 받아 가방에 넣으며 저녁에 코코넛 우유, 고기와 함께 요리해서 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국제관련 회의의 일원이 된 기쁨이여.

외국인들과 만나면 가끔 이상한 관습을 대하면서 재미있는 사건들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을 잡으려 하면서 주는 물건이 ‘뇌물’이 아닌 ‘선물’이며 모두 그렇게 한다는 이 관습이 우리로선 더욱 예외이어서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국제적 선물’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동네 친구나 동료에게 선물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선물인 것이다. 외부인에게 내 ‘문화’의 축소판을 전달하는 것으로, 선택에 따라 내 문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각 선물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날 오후 우연하게도 이란 태생 대학원 학생이 내 사무실에 들럿다. 지난여름 내가 벨칸토 오페라로 유명한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 티켓 두 장을 주어 남자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오페라를 보았던 학생이다(우리 부부는 시즌 티켓을 사는데 당시 여행 때문에 갈 수 없게 되어 오페라를 보지 않는 젊은 사람들 특히 티켓이 비싸서 못 가는 학생을 골라 주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내밀었다. 남자친구가 고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며 가져 왔다는 것이다. 사프란 양념이 든 작은 병과 이란의 정경들이 담긴 크고 아름다운 사진책이었다. 사진 설명이 이란어인 페르시아어와 영어 두 언어로 쓰여 있었다. 내가 언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아는 그녀는 책 속에 감사하다는 말도 두 언어로 써 놓았다.

참으로 귀한 ‘국제적 선물’이다. 특히 한 눈에 두 언어를 볼 수 있도록 왼쪽엔 본토어 오른쪽엔 영어로 쓰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책. 나는 그런 종류의 책 중에서도 인도의 시성 타골의 시집, ‘답게’ 출판사 한국문학 영역총서의 하나인 신경림의 ‘농무’를 무척 즐겨 읽는다.

한국대학 교수들과 달리 미국대학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선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선물을 받는 경우는 대개 외국유학생들로부터이다. 각자의 문화적 자부심이 반짝이고 받는 이가 자신의 문화를 진정으로 음미해 주기를 바라는 선물이다(우리 대학 교수들은 외국여행 때 캔터키 산 버번위스키를 선물한다. 글쎄, 그 술을 마시게 하면서 우리의 무엇을 음미케 하려는 걸까?).

이집트인이 타일랜드에서 샀다는 자메이카 산 양념 선물 그리고 사진책 왼쪽에 쓰인 신비한 (적어도 내겐) 페르시안 문장들처럼 각 문화들은 외부인들을 초대하지만 외부인들은 그것을 다 소화해내기가 힘들다. 각 문화는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받아 들여야 할 것인지 아닌지 외부인들을 방황케 한다.

케빈 커비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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