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모 시-촛불은 꺼진 다음에 다시 살아나리

2008-11-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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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노엘 신부님을 보내며-

양노엘 신부님
누가 촛불을
훅!
불어 껐나요
바람인가요
한숨인가요
그러나 촛불은 꺼진 다음에야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됩니다

예수 닮고 싶은
혈기 왕성한 젊은 사제 하나
그의 나이 스물 다섯살


선교지가
동양의 중국밑에 붙은 작은나라라고
어렴풋이 알뿐
Korea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이었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나라
전쟁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가난하고 어수선한
동양의 작은 나라

양노엘 신부님
조그만 키에 아일랜드 특유의 분홍빛 얼굴
그리고 호수처럼 파아란 눈
서양영화에서나 본듯한
아름다운 청년

어둠이 가득한
굶주리고 무지한 나라 Korea
팔을 걷어 부치고 본국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나르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학교를, 병원을 세우고,
어둠에 촛불을 밝힌
양노엘 신부님

어수선한 정치에 휘말리며 민주화운동으로
노동자편에 서서 목청을 높히다가 감옥까지 가셨지요

이십년 청춘을 불사르고 촛불를 밝힌 죄로
출국명령을 받은
양노엘 신부님

저희들은 한사람의 신자이기전에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죄송하고
그 감사의 촛불을 오래오래 간직할 것입니다.


양노엘 신부님
저 개인으로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신부님을 처음 만났고
젊은 주부였을때 서울 면목동성당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때로는 속을 털어 놓을 수 이는 친구였고
또 때로는 다정한 오라버니였습니다.

양노엘 신부님
그분의 부르심이었나요
이십여년 청춘을 불사르고
촛불하나 들고
태평양을 하늘로 건너 오셨습니다.

우리말이 목말라 서성이는 나그네들에게
또 촛불에 불을 당기셨습니다
우리말로 미사를 드리고
우리말로 고해성사를 보고
낯선땅에서 보잘것 없는 나그네들에게
남은 생을 사랑으로 바치셨네요

양노엘 신부님
지난날 언젠가 신부님의 생신때였던가요
졸작이지만 축시 하나를 써드렸습니다
그 시를 보시고 신부님은
제 어깨를 살짝 꼬집으시며
“로사! 어째 이렇게 거짓말을 잘해?
모두가 다 거짓인걸...”
하시면서도 좋아하셨던 얼굴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양노엘 신부님
도대체
누가 촛불을
훅!
불어껐나요
바람인가요
한숨인가요
그러나
촛불은 꺼진다음에야
꺼지지않은 촛불이 됩니다.

양노엘 신부님
한국에서 온 교수들을 가르칠 만큼
사자성어에 능통하시고
뛰어난 유모어와 재치, 넘치는 정
아버지같은 자상한 일상의 걱정들
신부님은 정녕 사랑 가득한 ‘한국인’이었습니다.

양노엘 신부님
나누는것을 누구보다 좋아하셨기에
항상 신부님은 빈마음 빈몸이었습니다.
신다들의 우려에도 모른척
몸을 돌보시지 않았고
사시사철 그린색 낡은 잠바 한벌이었습니다

양노엘 신부님
신부님은 가셨지만
웅리들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촛불이
영원히 꺼지지않고 남을껍니다

신부님
편히 쉬세요.

정해정
한국 ‘아동 문예 문학상’ 수상. 창작동화 ‘빛이 내리는 집’ 출간. 미주 아동문학가협회 회장.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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