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짓말 하는 ‘혀’ / 최형란(주부)

2008-11-1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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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배우며

최근 한국 문단에 또 표절시비가 일어났다. 2007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주이란씨의 단편소설 ‘혀’를 예심 심사위원이었던 조경란씨가 표절했다는 의혹이 그것인데, 문학 공모전, 그것도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표절의혹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 하는 혀’라는 소재를 달고 있는, 소설가 조경란씨의 장편소설 ‘혀’를 접했던 것은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다. 요리사인 여주인공과 미식가인 애인과의 사랑과 배신을 기둥 줄거리로 그 과정들을 통해 느끼는 인간의 감정들을 미각과 연관지어 풀어나갔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조경란씨의 작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지만, 흥미로웠다. 관심있게 읽었던 소설이라 이 표절시비에 대한 여러 기사들을 읽어봤다.
주이란씨는 동명소설 ‘혀’를 펴내면서, 조경란씨의 소설 ‘혀’가 자신이 응모한 소설 ‘혀’와 구성과 전개과정, 결말과 문체, 일부 문장들 내용, 등장인물과 주제가 일치하며, 혀가 성애와 거짓말, 미식을 내용으로 하는 소재등 여러가지 면에서 같음을 주장했다. 그녀는 조경란씨가 예심 심사위원 사실과 소설의 구상시기를 여러 매체 등을 통해 다르게 번복한 점을 들며, 13년전부터 미뤄왔던 소설의 구체적인 시놉시스는 자신의 소설을 읽은 신춘문예 심사후의 시점에 완성되어 ‘혀’를 출간했기에, ‘영혼을 도둑맞았다’면서 저작권분쟁 위원회에 심의신청을 했다.

조경란씨는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도 표절한 적도 없다며 지난주 저작권 위원회의 참석요구에 불참석했다. 그리고 이 표절시비에 대해 주이란씨가 사과하면 조정위원회에 참석할 것을 밝혔고, 주이란씨는 전 세계 문학독자가 이 사건을 알게 될 때까지 논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작은 표절시비만 일어도 문단에서 설 자리를 잃는 외국문단과는 달리, 지금까지 한국 문단 중견작가들의 표절문제는 끊이지 않았었고, 모두들 건재하고 있다.

이런 잦은 표절시비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문순씨는 “한번 뜬 중견작가는 출판사, 문예지 그리고 그에 소속된 평론가들과 완전한 결탁 형태로 끈끈하게 인맥을 만들면서 권력화하고, 이들은 해당 작가의 글이 탁월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 무조건 띄워준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해당 작가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데다, 작품을 도용당한 풋내기 작가나 작가지망생이 문단에서 매장당할 각오가 아니라면 든든한 배경을 가진 자신에게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권지예씨의 표절시비가 있었던 당시 표절이 아니라며 그녀의 손을 들어줬던 조선일보측은 이번에도 표절시비에 한창 휘말려 있는 조경란씨에게 동인문학상을 수여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문순씨는 “권지예씨의 경우에서 보듯 표절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문단권력(동인문학상의 조선일보)이 있는 한, 작가정신을 가진 문인을 기대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이번 표절의혹에도 문단은 무시와 암묵적인 침묵으로, 그리고 문제 작가와 대형출판사는 적극적인 해명 보다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논자들의 시선은 기계적인 중립과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기존작가들에게 비판을 가하고 신인작가 주이란씨를 옹호하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하며 사건은 쟁점화되고 있다.

이렇듯 이번 사건은 단순한 표절공방을 떠나서, 가장 순수해야할 예술 학문인 문학이 정치적인 문단권력 양상, 즉 문단내 기득권을 가진 기성작가와 신인작가, 가진 자와 자기지 못한 자의 계급구조의 대결구도를 보여주고 있기에, 한국 문단에 대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인작가들은 견고한 기존 문단의 권력구조 속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고, 대중들 그리고 문학도들 조차 순수문학을 외면하고 있으며, 공정성과 투명성, 기본적인 윤리성과 치열한 작가정신은 없이 그저 언어의 유희만이 난무하는게 한국 문학계의 현실인 것 같기 때문이다.

창작이 무엇이던가... 작가가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모든 것을 걸며 글자 하나 하나를 피와 눈물로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 표절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런 표절시비가 일어난 그 자체와 이 공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창작 의욕을 저하시키고 커다란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기 충분하기에, 앞으로 누가 그 힘든 창작의 길을 걷겠나 싶다. 작가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누구의 ‘혀’가 사람들을 향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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