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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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웃음을 잃은 계절

2008-11-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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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맑은 날이 많아졌다. 산산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영원까지 닿아 있을 것 같은 끝없는 하늘을 본다. 불교경전 숫타니 파이타는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걱정한다.

집착이 있으면 근심이 있고 집착이 없으면 근심도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이 밖에 이경전에는 “가진 것”이 초래하는 고민과 고통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많으며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보다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 삶의 목표임을 강조 한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남보다 좀 편리하게 지낼 수는 있으나 고통도 크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걱정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 등, 이 세상을 변하게 한 성인이나 철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들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들은 화려한 궁전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큰 파티를 베풀었다거나 제자들의 생활비를 뒤에서 도와주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없다. 예수나 석가, 소크라테스는 항상 제자들이 갖다 주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이고 직장인들은 구조조정 때문 감원 바람이 불어 좌불안석이다. 그나마, 장사도 안하고 현찰을 예금 해놓은 사람들은 은행파산 바람이 부니까 또 걱정이다. 이상하게도 돈 있는 사람일수록 걱정이 더 많다. 자고 나면 주식 값이 내려가 재산이 줄어드니 피가 마른다. 또 부동산 부자들은 렌트 못 내는 입주자들이 늘어 고민이다. 예전 같으면 당장 쫓아내겠는데 쫓아내 봤자 들어올 사람도 없고 특히 상업용 샤핑센터의 경우 빈 가게가 생기면 다른 업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요즘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이 불경기입니까? 하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웰페어를 타는 노인들, 큰 회사의 말단 봉급쟁이, 은퇴를 기다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연방 공무원 등은 행복한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별로 돈 버는 것도 없지만 별로 걱정도 없다.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고 특히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많이 가진다는 것은 많이 얽힌다는 뜻이다. 잘못하면 애써 모은 재산을 다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재물에 의해 불평등하지만 재물이 주는 고통에 평등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케 하는 것이 불경기의 특징이다.

얼마 전 월스트릿 저널에 ‘홈리스 억만장자’라는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렸었다. 내용인 즉 월가에서 성공해 억만장자가 된 니콜라스 베르구엔이라는 사람이 집과 재산을 다 정리해 자선기관에 희사하고 자신은 작은 호텔로 거주지를 옮겨 직장을 출퇴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왜 돈이 싫어졌습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재산이 늘어날수록 걱정도 늘어납니다. 관리해야 하는 책임에 눌려 삶을 즐길 수 없게 되죠. 돈이 가져오는 행복감은 돈을 쓸 때입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되 돈을 소유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기 싫다는 것이다. 그는 무소유의 의미를 깨우친 것 같다. 무소유의 참다운 의미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넘치는 소유로 인한 얽매임에서 해방되라는 의미다.

사람은 뭐가 모자랄 때는 고마움과 만족을 알게 되지만 넘치면 자만해 고마움을 모르게 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 건강이라든가 잘 자라주는 자녀라든가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 현대인들의 공통된 병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슴을 너무 쫓다보면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게 된다. 욕심 많은 아리바바의 형처럼 동굴 속에서 너무 오래 보물을 담다보면 문이 닫히게 되고 결국 그때 가서는 “열려라 세사미!”라는 주문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부자가 가지는 최대의 고통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하소연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만달러짜리 승용차에 100만달러가 넘는 큰 집에 살면서 죽는 소리하면 누가 동정을 하겠는가?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에 웃음이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올 여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웃음을 잃은 계절이었다. 경제의 시련은 슬기를 찾으라는 시그널이다. 이번 불경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많이 가지면 그만큼 고통도 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난한 것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얻는 무형의 재산이 있다는 점이다. 등산을 하려면 산에 오르는 길뿐만 아니라 내려오는 길도 자세히 알아야 미로에 접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 셈이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봄처럼 새순이 나서 차오름이 있기를 비어가는 가을도 있는 것처럼 느껴본다.

김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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