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기고-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한반도

2008-10-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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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이번에도 통한 것일까. 지난 8월26일 핵 불능화 중단 조치 이후 위기수위를 높여온 북한에게 미국이 큰 선물을 줬다.

북핵 해결의 ‘중대기로’에서 미국 국무부가 지난 10월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를 고려할 때 미국은 폐쇄→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3단계 북핵 해법의 중간결산을 위해서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1988년부터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북한은 공산국가로서 미국의 적성국 교역금지법에 의한 규제를 받는 가운데 테러지원국으로 이중의 제재를 20여 년간 받았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 편입을 위한 첫걸음이란 의미가 크다. 북한은 북미 핵협상 과정에서 적성국교역법 적용과 테러지원국 지정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으로 들며 줄기차게 적용 해제를 요구해 왔다.

지난 6월26일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에 이어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져 북한의 북미 적대관계 해소 숙원 과제가 하나씩 풀려 나가게 됐다.

문제는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남북관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교착국면에 빠져있다. ‘비핵·개방 3000’의 관점에서 보면 비핵부문에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이해의지를 밝히는 문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해결, 북측의 지원요청이 있어야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의 고수 여부 등 이명박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북한이 남북갈등을 지속하는 것이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 개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른바 ‘通美封南接日’(통미봉남접일)을 할 경우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더 경색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통하지 않고 워싱턴과 도쿄로 가는 데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점을 북한은 깨달아야 한다.

남북 갈등은 영구분단을 선호하는 주변국들에게 대 한반도 영향력 증대만을 가져올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은 남북화해가 진전되는 것보다는 남북 갈등구조를 활용해서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를 단순히 남과 북의 문제로 단선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함으로써 북한도 정책 전환의 전기를 마련했다. 북한은 그동안 북미적대관계 때문에 정책전환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북한은 개혁개방을 본격화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월간조선 10월호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핵탄두 몇 개로 주민들 밥을 먹일 수 있는가?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영양실조에 걸리고 병원치료도 못 받는 상황을 언제까지 참겠는가?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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