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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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2008-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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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텅 빈 것이 또 가을이 오는가 보다. 여름내 들락거리던 애들로 오래간만에 사람 사는 듯했던 집안은 또 적막감이 맴돌고 부부만 덩그렇게 남겨진 일상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아직도 허전한 기분이다. 친구들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큰아이는 학교로 직행해 추수 감사절께나 집에 온다는데, 인정머리 없는 녀석, 이메일 한 장 없다. 같은 LA 하늘 아래 있는 대학에 다니는 둘째아들 녀석은 일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집에 다니러 올 생각은커녕 전화라도 할라치면 무지 바쁘다며 단답형의 용건만 간단한 반응이다.

나도 사실 그 나이 때엔 뭐가 그리 바쁜지 부모의 걱정은 뒤로 한 채 훌훌 날아 다녔었다. 그래서 그들을 머리 속으로는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부모자식과는 일촌, 그런데 아들 녀석이 대학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결혼하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데면데면한 아들 녀석들한테 다정다감한 딸 같은 반응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원래 무리지만, 도통 얼굴 마주할 기회조차 없으니 이러다 정말 먼 친척뻘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애들 어렸을 때는 시부모님까지 여섯 식구가 여행도 많이 다녔었다. 커서는 도통 따라 나서질 않아 추운 산꼭대기에서 밥 시중해야 하는 겨울 스키 여행이 그나마 유일한 가족여행이 되었다. 앞으로 세월이지나 애들이 점차 성장해 각자 식구를 거느리고 다른 도시에 살게 되거나하면 가족끼리 다함께 모이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온 집안에 널려있는 여행지에서의 보물 같은 추억의 모음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식과의 이별의 연습은 일찍 사춘기부터 시작하여 대학으로 떠나보내게 되면서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다. 시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시집 장가보내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느덧 장년이 되면 자식에 대한 미련조차 저절로 사라지는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이토록 무심한데 각자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후들후들 춥다. 재치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그들의 허무함을 표현한 유머로 짐작해 보자면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고 며느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그런데 까르르 웃으면서도 왠지 뜨끔하다. 하물며 나는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하나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 “목매달”감이 아닌가.

지갑과 귀는 활짝 열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는 나이 들어 우아하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조건의 대부분을 실행은커녕 조그만 일에도 섭섭하게 쉽게 틀어지는 그 코딱지만 한 포용력을 갱년기 탓이라고 떠넘기기 바쁘다. 어느 날 엄마가 “너는 좋겠다. 앞날이 활짝 펼쳐져 있어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어느덧 애들이 그때 내 나이가 되어 있고 나는 마음만 청춘이다. 아이들 양육의 짐을 홀가분히 털어내어 자유로운 제2의 삶을 활기차게 사나하고 옆을 돌아보니 끝까지 내 옆을 지켜줄 배우자, 남편이 허옇게 머리가 세어 중년의 신사가 되어 서있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 우리는 매일 매일 이별의 연습을 하며 지내는 것조차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매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고 허비하고 산다. 그동안 애들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남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즐겁게 보낼 것이다.

그동안 틈틈이 일까지 하며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었던 제2의 인생 챕터, 훌륭히 소화해낸 것에 대해 자신한테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자꾸 기회를 만들어 가족 간의 결속을 두텁게 다지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진짜 이별의 시간이 닥쳐와도 주머니는 가난해도 인생은 풍만했던 삶에 감사하지 않을까.

애니 민
다이아몬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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