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구장서 못다핀 캔세코

2008-10-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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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밀수 혐의로 법정에

잘 치고 잘 뛰고 수비 좋고, 그는 야구선수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주변의 그런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실력으로 답했다. 1985년 오클랜드 A’s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야구판에 선을 보인 그는 단기간에 수퍼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행크 애런이 보유중이던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최다홈런 기록(755개)을 깰 확실한 후보로 그는 늘 상위권에 꼽혔다. 그는 시원한 홈런포를 쉴새없이 터뜨리며 그런 기대에 한방한방 착실하게 부응했다.

쿠바 출신의 슬러거 호세 캔세코. 거의 모든 투수들을 압도한 이 사나이에게 준 신의 은총은 또 있었다. 메이저리거 야구사나이였으니 건장한 체구(6피트4인치/240파운드)는 기본, 거기다 그는 배우 뺨치는 용모에 실제로 배우 뺨치는 연기력까지 겸비했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넘치는 재주는 그의 야구역사 다시쓰기를 좀먹었다. 영화출연 등 잦은 외도로 본업을 소홀히 하더니 마약의 덫에 빠져들었다.

상대 투수들을 압도했으나 바로 자신을 제압하지 못한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 구단 저 구단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데뷔 시즌부터 몸담았던 A’s를 떠나 1992년 시즌도중 텍사스 레인저스로 간 그는 1995년과 1996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996년에는 다시 오클랜드 A’s로, 1998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1999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당시 데블레이스)로 전전했다. 2000년에는 조 토리 감독(현 LA 다저스 감독)이 이끌던 최강 뉴욕 양키스의 부름을 받아 제2의 전성기를 맞는가 했으나 그곳에서도 끝내 캔세코다움을 보여주지 못한 채 1년도 못 채우고 만년 바닥팀이었던 탬파베이 레이스로 되돌아갔고, 2001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갔다가 거기서 파란 많은 메이저리거 17년 생활을 접었다


슬러거 부문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기대됐던 캔세코는 결국 단 한가지 기록도 갈아치우지 못한 채 커리어가 끝났다. 영화출연 마약중독 등 외도의 쓰디쓴 과보를 깨달았을 땐 그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1,887게임에 출장해 7,057타수 1,186득점 1877안타(462홈런) 1,407타점, 906볼넷, 1,942삼진, 200도루, 통산타율 2할6푼6리. 야인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신은 내게 참으로 많은 은총을 베풀었다. 다만, 그것들을 꿸 수 있는 능력만 빼놓고.

승부의 필드에서 사라진 캔세코가 몇 년만에 매스컴은 탄 것은 2005년이었다. 자신의 금지약물 복용사실을 털어놓으며 다른 선수들의 복용설까지 흘린 것이었다. 자신의 고해성사는 현역 선수시절에 들통난 것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했던 만큼 약발이 덜 먹혔지만, 몇몇 스타플레이어들의 비밀을 들춘 것을 두고 용기있는 폭로냐 의리없는 폭로냐 등등 숱한 뒷말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캔세코가 다시 언론을 탔다. 또다시 약물과 관련해서다. ESPN 등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 9일 미-멕시코 국경 인접지역에서 마약단속반의 검문에 걸려 약 10시간동안 샌디에고의 샌이드로국경통과소에 억류됐다. 그는 멕시코로부터 마약을 들여오려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의 차량에서 코리오닉 고나도트로핀이라는 근육강화제가 적발됐다. 이는 처방전 없이는 복용할 수 없는 금지약물이다.

이민관세국 요원들은 10일 캔세코의 LA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캔세코의 변호인은 이 수색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며 지나친 처사라고 항의했다. 당국은 논평을 거부했다. 다만 미이민관세국 대변인은 캔세코가 밀수혐의로 연방법원 소환명령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9시간30분동안 유치장에 갇혔다 풀려난 캔세코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심신관리를 잘했다면 어쩌면 지금도 타석을 드나들거나 ‘최신 전설’ 자격으로 가을의 클래식을 감상하는 귀빈석에 자리하고 있을 그는 법정에서 마약밀수 혐의라는 마구(魔球)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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