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산과 시

2008-10-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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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서울 살 때 보니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일들 중의 하나가 등산이었다. 서울 주변에 산이 많아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잠깐만 타고 가도 쉽게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나와 비슷한 40대 한국 사람들이 시를 미국인들보다 더 즐긴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등산과 시를 함께 즐긴다는 것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내의 대학 선배가 북한산으로 등산을 가자고 했다. 그는 매달 첫 일요일에 등산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의 회장이었다. 그는 산에서 읽을 시도 준비해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등산모임의 전통이라며.


등산 전 날, 그는 우리를 집에 불러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그 등산모임이 그 전 해에 읽었던 시를 모은 것이라며 시 묶음을 건네주었다. 대부분은 한국 시였고 두 개의 서양 시도 있었다. 릴케의 ‘헤르브스탁’(Herbsttag; 가을날)은 내가 고등학교 때 독어시간에 외워야 했던 시였다. 프랑스 시인 베를레인의 자주 읽혀지는 ‘샹송 도톰’(Chanson d’automne)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서울 북녘 북한산에 도착하여 그 모임에 합류했다. 그날은 북한산의 서로 접해 있는 험한 봉우리 다섯 개를 4시간 동안 정복하는 것이 목표라 했다. 그 선배는 “자, 저게 첫째 봉우리야”라면서 우리 앞에 850미터 높게 서 있는 험악하게 생긴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우린 곧 일반 등산객이 다니는 길을 벗어나 숲길을 따라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파르게 경사진 산길을 한 시간 정도 허둥지둥 걷고 나니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성벽이 나왔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덩치 큰 돌들 사이에서 간신히 발끝이나 디딜 수 있을 정도의 틈을 골라 산을 올라야 했다. 다행히 굵직한 쇠 케이블이 바위에 박혀 있어 그것을 붙잡고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밑으론 깊은 계곡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고 우린 계속 가파른 경사를 따라 위로 옆으로 움직여야 했다.

어릴 때부터 고소공포증을 보였던 나의 다리는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젤리처럼 후들거렸다. 다시 내려갈 길을 보니 아찔했다. 그리고 곧 나는 툭 삐져나온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세게 찧고 말았다. 모자가 핏물에 젖어갔다. 한국 사람들은 별 생각도 없이 무사하게 지나갔건만 키가 컸던 나는 무사히 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었던 내 팔 다리는 오직 50대 한국인들의 힘찬 에너지에 뒤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40대 미국인이 그들에 뒤쳐진다면 그들이 무어라 생각하겠는가?

아내는 머리 위를 보면서 움직이라고 재촉했지만, 난 발 딛을 곳을 찾느라 그럴 경황이 없었다. 드디어 첫 봉우리 꼭대기에 도착했다. 나는 그제야 엄청난 장관을 감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는 험한 바위들이 가파르게 삐져나오고 나무가 빽빽하게 차 있는 산이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멀리엔 고층 아파트 단지와 빌딩들이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서울이 그곳에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에 이르렀을 땐 모두 너무 지쳐서 시는커녕 숨만 몰아쉬고들 있었다. 우린 고구마, 초컬릿을 먹으며 잠깐 쉰 다음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 놓은 북한산 입구 한 작은 식당에 갔다. 평상 앞에 가부좌를 하려니 다리에 심한 쥐가 내렸다. 다행히도 그들은 맥주, 위스키, 소주, 막걸리 등, 근육 이완제를 계속 주문했다. 결국 우린 매운 닭도리탕을 먹고 나서야 시를 읽었다. 나는 구상씨의 삭막한 시 ‘무상’을 읽었다.


그 선배는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옮기면서 그 날의 등산 ‘원정’이 보통 때보다 힘들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를 겨울등산에 또 초대했다.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버린 나는 약간의 술기운으로 그만 ‘예스’ 하고 말았다. 바위를 한번 정복해 봤는데, 얼음이 좀 꼈다고 못할까.

나는 아직도 그 핏물 든 모자와 구상씨의 ‘무상’이 적힌 종이를 간직하고 있다. 내 사무실 창밖으론 오하이오와 북 켄터키를 가르는 오하이오 강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신시내티 시내까지 7마일 정도의 경치가 죽 펼쳐져 있다. 한데 산이라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없다. 아, 서울이 그립다.

케빈 커비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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