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사(The French Revolution)는 영국의 역사 사상가인 토마스 카라일(Thomas Carlyle)의 회심의 역작이다.
이 책을 회심의 역작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에는 실로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한번 시작 했다고 하면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칼라일이 10년 이상의 긴 세월의 준비 끝에 드디어 프랑스 혁명사의 초고를 완성하였다. 10년 만에 완성된 원고를 바라볼 때 그 솟구쳐 오르는 감회와 기쁨을 말로다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원고 뭉치를 들고 절친한 친구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에게 달려가서 그 원고의 검토와 의견을 부탁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밀이 그날 저녁에 서재에서 칼라일이 부탁한 원고를 읽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그의 하녀가 서재를 청소하다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원고 뭉치를 쓰레기로 착각하고 난롯불을 피우는 불쏘시개로 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밀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칼라일에게 단숨에 달려갔다.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네. 오늘 아침에 나의 하녀가 그 원고를 휴지로 잘못알고 난로에 넣어버리고 말았다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칼라일은 너무 기가 막혀 하늘이 무너지고 숨이 넘어 가는 듯 깜깜했다.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식음도 전폐하고 두문불출하며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10여 년 동안 피나는 노력 끝에 완성된 그 소중한 원고가 한순간에 흔적도 없는 잿더미로 살아졌으니 처절한 절망감과 허탈감에 속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칼라일은 아무 생각 없이 창가에 앉아서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밖에서는 무너진 담장을 수리하기위하여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인부들은 무너진 담장을 어떤 방식으로 고칠 것인가를 한참 의논하는 것 같았다. 그러
다가 그들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무너진 담의 일부분만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다 허물고 새로운 담장을 다시 건축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러므로 칼라일은 인부들이 벽을 한장 한장 쌓아 올라가는 것을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게 되었다.
벽돌공들이 옛 담장을 허물고 새 담장을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는 광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칼라일은 순간에 놀라운 영감을 얻었다. 저 일꾼들은 무너진 담장 하나를 수축하기 위해서 아무 미련 없이 전체를 다 허물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데 나는 원고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처럼 낙심하여 아무 일도 못한 채 주저앉아 있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나도 저 인부들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토마스 칼라일은 단숨에 질풍과 같은 열정과 속도를 가지고 프랑스 혁명사를 단숨에 다시 써내려갔다.
그리고 얼마후 그는 그처럼 꿈꾸던 책을 후대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칼라일의 프랑스혁명사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그 책은 그저 단순히 지식과 역사를 담은 그런 평범한 책이 아니란 말이다. 프랑스 혁명사는 칼라일의 영감과 믿음과 인격이 담겨진 책이다. 그가 어떻게 절망과 좌절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 이 책을 썼으며,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를 탓하지 않고도 그가 어떻게 재기하고 성공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 바로 프랑스 혁명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다. 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앞이 캄캄하게 막히는 고난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잊지 마라. 세상의 모든 집마다 창문이 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일의 가능성을 내다 볼 수 있는 희망의 창문과 꿈의 창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사라져 없어진 과거의 실패를 더듬고 사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행복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행복이란 언제나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고,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일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바로 그 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꿈을 가져라. 네가 가지고 있는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설사 1% 뿐이라고 해도 꿈을 가져라.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사랑 한다. 복음
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언제나 희망을 바라보고 노래했지 절망에 갇혀 부정적으로 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내게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 4:13)는 것을 믿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당신의 환경이 답답하고 어두운가? 그럴수록 새로운 밖을 내다보는 희망의 창문을 닫지 말라. 희망의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믿음의 안경을 끼고 밖을 바라보라. 사람은 누구든지 희망의 창문의 크기만큼 내일의 삶의 크기가 달라지게된다. 하나님,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고 새로운 자아상을 가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창조적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