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인 한국이 여전히 매년 수천명의 입양아를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한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알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24일까지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입양 작가들의 그룹전 ‘입양: 정체성의 팰림시스트 Adoption: Palimpsest of Identity’에 참가한 다큐멘터리 작가 마야 웨이머(사진)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10명의 입양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입양의 문제는 경제가 아닌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전후의 어려운 경제 사정 속에서 세계 최대의 아이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어느 정도 벗었고 작가의 말대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이지만 미혼모로 살아가
기가 힘든 사회 인식과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삼는 것을 꺼리는 정서 때문에 여전히 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웨이머씨의 작품 ‘무제’는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스크린에 보여지는 ‘2 채널 설치작’으로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사연이 영상과 자막을 통해 ‘담담하게’ 보여진다. 담담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인터뷰에 응한 화자의 모습을 관객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화면속에는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오고가는 일상의 길거리만이 비춰진다. 많은 수의 미혼모를 포함해 자신의 사연을 드러내놓고 살 수 없는 익명의 입양모들과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사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 자신이 생모를 만났지만 이미 다른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생모에게 작가의 출현은 대놓고 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팰림시스트’의 사전적 정의는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글을 쓴 양피지 혹은 흔적위에 덧쓰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번 전시에서는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리킨다. 입양이라는 사회 제도가 개인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지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작품과 맥을 같이한다. 입양과 정체성, 사회와의 관계 등의 주제는 자신과 연관된 사적인 주제이자 실험성과 사회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작품 성향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UCLA와 소르본느 대학에서 영상을 공부한 웨이머씨 다큐멘터리는 PBS 등의 공영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다.
<박원영 기자>wy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