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린스에 6대5...9회초 3점 맞은 뒤 9회말 결승점
- 소방수 윌슨, 케인 선발승 날리고 겸연쩍은 첫승-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플로리다 말린스의 1회초 공격을 실점 없이 잘 넘겼다. 그리고 곧 매운맛을 보였다. 1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랜디 윈이 가벼운 스윙으로 왼쪽담장을 넘어가는 기선제압 솔로홈런을 작렬했다. 좀체 표정이 없이, 아니 아주 무뚝뚝한 표정으로 필드를 응시하곤 하는 브루스 보치 감독은 고작 1회인데도, 게다가 전날의 패배를 잊었을 리 없을텐데도 20일 밤 홈구장 덕아웃에서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옆에 붙어앉은 타격코치와 느긋한 웃음속에 뭔가 속삭이는 장면도 중계카메라에 잡혔다. 마치 다 이긴 경기 끝물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기는 아직 1회였다.
자이언츠의 선발투수 맷 케인의 구위에 눌린 말린스가 4회초 비로소 응수했다. 한참 뜸을 들인 말린스의 응수는 매서웠다. 제레미 허미다의 2점짜리 좌월홈런(시즌 16호)이었다. 자이언츠는 4회말과 5회말 두 이닝을 허비했다. 점수 쥐어짜기를 위해 헛몸살만 했다. 이윽고 6회말, 볼것을 봤다. 리치 어릴리야의 좌익수쪽 2루타로 동점을 만들고 프레드 루이스의 중전
적시타로 한걸음 달아난 뒤 이매뉴얼 버리스의 같은 코스 적시타로 4대2. 자이언츠는 7회말에도 벤지 몰리나의 우전 적시타로 또 한번 말린스의 목을 쥐는 등 단단히 본때를 보였다.
자이언츠의 승리는 굳은자로 성큼 다가섰다. 7.2이닝동안 산발 5안타에 4볼넷 4삼진으로 2점만 내준 맷 케인의 승리는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타일러 워커는 원포인트 릴리프 소명을 100% 완수, 5대2 리드는 8회말까지 이어졌다.
9회초 말린스의 마지막 공격. 보치 감독은 특급소방수 브라이언 윌슨을 투입, 잠그기에 들어갔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윌슨이 되레 불을 질렀다. 3안타 3실점. 잔 베이커에게 3점홈런을 엊어맞는 순간, 엎었다 제꼈다 어렵사리 다시 고정시킨 자이언츠 리드는 물거품이 됐다. 5대5. 윌슨은 3삼진을 낚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었다. 시즌 34번째 세이브는 날아갔다. 7.2이닝동안 죽자사자 125개의 공을 뿌려 익혀놓은 선발투수 케인(8승9패)의 9번째 승리를 1이닝만에 날려버린 건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활활 타오르는 불도 꺼야 할 소방수가 나지도 않은 불을 낸 격인데 이날의 승리투수 월계관이 윌슨(1승2패, 33세이브)에게 씌여졌다는 건 한층 겸연쩍은 노릇이었다.
이럴 때면 감초처럼 떠올리듯 야구가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9회말에 생긴 일로 모든 것이 한바퀴 더 굴렀다. 죽었다 살아난 말린스는 연장전을 생각하고 맷 린트스트롬을 9회말 방패막 투수로 내보냈다. 자이언츠 보치 감독은 이럴 때면 늘 의지하곤 했던 감초를 대타로 내세웠다. 백전노장 데이브 로버츠. 잔뜩 웅크린 채 공을 뚫어져라 응시한 로버츠는 볼넷을 골라냈다. 8월들어 방망이에 불이 붙은 랜디 윈이 얕은 좌전안타를 쳤다. 어안이 벙벙했던 AT&T 팍 관중석에선 야단이 났다. 이반 오초아가 희생번트를 대 주자들은 한칸씩 전진시켰다. 애런 로왠드가 타석에 등장하자 말린스 덕아웃에선 즉각 걸려보내라는 사인을 보냈다. 1사 만루. 다음타자는 벤지 몰리나. 요즘은 좀 뜸했지만 일단 멀리 보내는 데는 일가견을 가진 그의 방망이에 맞고 튕겨나간 공이 중견수쪽으로 날아갔다. 중견수 글러브에 빨려드는 것과 동시에 3루주자 로버츠는 홈으로 치달았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오락가락 경기에 마침내 끝종이 울렸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