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샤스타에서 별을 보다

2008-08-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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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샤스타 산(Mt. Shasta)을 오르다. 근 5년만의 산행이다. 슬하를 떠난 지 수년 째, 그들 삶도 바쁘고 고달파 인근에 살아도 좀체 만나기가 힘들다. 옛적엔 배낭 꾸려 곧잘 산엘 올랐는데 희미한 그리움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큰아이가 수련의 3년 만에 두어 주 아프리카 의료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 최고봉 킬리만자로에도 오른다고 한다. 형제가 합작해 큰아이의 고산훈련 계획을 짰다. 요즘 난 어깨근대가 탈이 났지만 의사 허가를 얻어 샤스타 등정에 짐꾼으로 합류키로 하다.

북미대륙의 정상은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m). 그 다음이 캘리포니아 시에라 산맥의 위트니(4,421m)다. 험산준령들이다. 북가주 연안에선 샤스타(4,322m)가 단연 빼어나다. 빙하로 덮인 고산이지만 아마추어들에게 관대하고 비교적 가까워 훈련코스로 정하다.


일과를 마치고 오후 늦게 샤스타로 향한다. 새벽 2시께 도착한 산자락 초입. 자연의 뜨락에 들어서니 도시 소음이 멎고 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고향 같은 자연의 품이다. 바니 플렛(2,600m)에 정차해 잠시 눈 붙이고 약속된 가이드를 만났다. 알파인 등반요령과 주의사항을 듣다.

우리가 택한 7월 초가 샤스타 등반의 적기라고 한다. 8월만 돼도 눈이 녹아 낙석사태가 잦다는 게다. 더 큰 위험은 기후변화. 산이 깊고, 표고가 3,000m 이상 솟아 낙뢰를 동반한 폭풍우나 시계제로의 눈보라가 쉬 몰아친다고 했다. 매 300m마다 기온이 3도씩 떨어진다니 정상은 한여름에도 극지다.

우리는 정상까지 에벌랜치 코스를 택했다. 40파운드 배낭을 각자 지고 헬렌 호수(3,400m)까지 올라 일박하기로 한다. 침엽수림이 2,800m 쯤에서 끝나고 경사가 심한 돌밭이 나타난다. 끙끙대고 오르니 얼음과 눈 더미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석양 무렵, 꽁꽁 언 헬렌 호수에 도착, 텐트를 쳤다. 눈을 녹여 차를 끓인다. 일찍 침낭에 누워 올려다보는 무공해 밤하늘. 별들이 모두 나와 반기 듯 반짝인다. 평지에선 겨울에나 보는 오리온 좌도 손끝에 닿을 듯하다.

비로소 내가 산의 품에 안식한다는 실감이 난다. 자연의 힘(氣)은 세속에 찌는 나를 송두리째 정화시켜 주는 데 있다. 침낭 속에서 눈감으면 청정호수 속에 뛰는 숭어가 보이고 솔 냄새가 향긋하다. 갑자기 내 오감이 땀구멍들처럼 열린다. 자연은 이렇게 꼭 닫힌 내 속을 열어 조물주의 임재를 느끼게 해준다.

새벽 3시. 스파이크 등산화를 신고 칠흑 같은 산길을 오른다. 굴뚝바위까지 오르니 동이 훤하다. 얼음 경사가 25%나 되고 산소가 엷어져 숨이 가쁘다. 모두 밧줄에 몸을 묶고 일렬로 오른다. 열 자국마다 쉬며 숨을 고른다. 45도 경사면에 이른다. 빙하가 녹아 무릎까지 빠지다가 음지엔 얼어 미끄럽다. 천국 속의 지옥 행군이다. 허나 정상이 코앞이다.

그런데 별안간 돌발사태가 난 것이다. 우리 앞의 백인 3명이 하산 중 로프에 묶인 채 한데 굴러 떨어졌다. 맨 뒤 가이드가 다리가 부러져 저 밑에 뒹굴고 있다. 큰아이는 두 말 없이 우리의 로프에서 자기 몸을 푼다. 그리고 위태로운 급경사 빙판을 기어서 부상자 곁으로 다가간다. 마치 내 탯줄에서 떨어져 가듯 안쓰럽다. 허나 햇병아리 의사의 표정은 의연하다.

큰아들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조난 응급조치를 취하고 몇 시간 함께 구조 헬기를 기다려 대피시킨 후 하산했다고 한다. 정상을 포기하고 내려온 아들의 등을 위로 겸 쓸어주었다. “시몬, 인생에서 정상정복보다 더 중요한 게 그 과정을 어떻게 살았느냐 라는 말이 실감나지?” 아들은 씩 웃고 만다. 유성이 긴 꼬리를 불꽃처럼 뿌리며 우리에게로 달려온다.

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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