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늦여름 굵은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밤이었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 TV 생방송을 녹음할 비디오테이프를 사러 동네 K-마트를 갔다. 차를 세우고 우산을 펴면서 나와 문을 닫았는데 아뿔싸 차 속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시동을 걸은 채 문을 잠근 것이다. 개막시간이 가까워져 마음이 몹시 급했었다.
한국을 첫 방문하고 온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은 때라 나 역시 올림픽을 처음 개최하는 한국의 흥분과 긍지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20여분 밖에 남지 않은 개막식을 녹음은커녕 보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핸드폰이 없던 때라 가게에 들어가 테이프를 사고 받은 동전으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차라곤 문제의 차밖에 없고 며칠 전에 이사 와서 이런 일로 도움 청할 만한 마땅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만삭이 가까워 오는 아내가 택시를 불러 어둠과 빗속을 뚫고 와서 여분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집에 와 허겁지겁 테이프를 녹화기에 넣고 녹화 버튼을 누르니 개막식 5분 후였다. 그때 녹화하지 못한 첫 5분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기억된다. 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하는 한국인의 애국심 대폭발을 영원히 보존하려던 나의 열정적 기대감으로.
2008년 지금 올림픽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 세계가 기대하는 일을 놓고 그저 소시민일 뿐인 나 개인의 소견을 공개적으로 쓰는 게 좀 어쭙잖지만 나는 이번 금요일 베이징의 개막식을 보지 않을 것이다.
왜? 정치적 이유로? 티베트 문제 때문에? 중국의 비민주적 제도에 대한 반발로? 물론 그것들이 심각한 문제들이긴 하지만, 내 이유는 중국 때문이 아니다. 1988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안 볼 것이고 1996년으로 되돌아간다면 애틀랜타 올림픽을 안 볼 것이니까 (고백하건대 올림픽 근원지인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이라면 여전히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내가 올림픽을 근본적으로 반대하게 된 것은 올림픽을 통한 충동적 애국심이 너무 섬뜩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나라들은 올림픽을 열 때 자긍심에 가득 찼었다. 경기 중 자국 선수가 타국 선수를 이길 때도 우리들의 나라들은 기쁨의 격정을 이기지 못했다. TV를 통해 국제경기들을 보면 대개 각 선수들 나라의 국기를 그들 이름 옆에 나란히 보게 된다. 마치 사람 간의 경기가 아니라 나라 간의 싸움인양. 전쟁 보다는 나은 싸움이 아닌가? 얼마나 안전한 전쟁인가?
그렇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올림픽은 전쟁 위험이 따르는 국가적 차원 애국심의 예민한 곳을 건드린다. 지난 4월 말 한국에서의 올림픽 성화 봉송 때를 보자. 100여명의 중국 유학생들이 호텔로비에서 단 3명의 티베트인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고 또 다른 수 백 명은 평화시위 소수 시민단체 회원과 경찰 등 한국인들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가했다.
애국심은 훌륭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 몇 세대 동안 끊임없이 받았던 타국들의 비판에 대해, 애국적 움직임을 조장 이용하면서 국가적 분노를 강조 선전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애국심은 지난 7년 동안 파괴적 힘일 뿐이었다. 애국심은 ‘국가적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존심이란 기독교가 금기해온 7대 죄악 중 하나가 아닌가.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 화려한 불꽃놀이와 무용으로 시작되는 스포츠일 뿐이지 않은가? 아니다. 나는 차라리 동네 운동경기를 보겠다. 우리는 시애틀과 시카고 팀의 야구경기를 보면서 시애틀 토박이 선수들과 시카고 토박이 선수들의 경기가 아님을 안다. 그 경기는 타 도시 혹은 타국에서 온 선수들이 시애틀과 시카고란 이름 아래 모여 멋진 솜씨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지역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긴 해도, 그것은 일종의 모의 자존심으로 국가적 자존심과 달리 산만하고 전투적 정열을 조장하지 않는다.
지난 6월 베이징에 가니 도시가 올림픽 준비로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건물들도 멋졌다. 중국은 관심이 많이 가는 나라고 사람들이 참 마음에 든다. 곧 다시 가서 그들의 문화를 더 보고 배우고 싶다. 하지만 중국친구들에게 그들이 오랫동안 연습해왔고 온 세계가 기대 갖고 기다리는 개막식을 보지 않겠다고 한다면 뭐라고 할까? 상당히 기분나빠할 것이다. 바로 그 반응이 이 글의 포인트다. 아, 야구경기를 볼 시간이 되었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