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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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으로 망친 자녀

2008-08-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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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전 교회 수양회에 갔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이중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이중언어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한 여성이 머리에 빨간 색을 물들인 아들을 데리고 왔다. 당시에는 머리 염색이 흔치 않아서 그 아들의 빨간 머리가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체구가 작은 그 여성이 다 큰 아들을 어린애처럼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나 자식이나 좀 모자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양회는 목요일 저녁에 들어와서 토요일 오후에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새벽기도로 시작해서 아침 예배, 오후 예배, 저녁 기도회 등 바쁜 일정이었다. 그 어머니는 연신 손을 들고서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 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가 잠을 못 자고 뒤척이기에 말을 걸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이가 4세 때 이민 와서 남편과 식당을 했는데 식당에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가 혼자 놀 때가 많았다고 한다. 아이가 여섯 살 때 이웃에 사는 30대 백인 남자가 아이를 예뻐하며 잘 놀아주고 아이도 잘 따르기에 고마워했다.

얼마 후에는 백인 남자가 아이에게 돈 안 받고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영어를 몰라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 돌볼 시간도 없으므로 흔쾌히 수락했다. 백인은 방문을 꼭 닫아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부모는 바빠서 그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무슨 교재를 쓰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그 방을 구경 한번 못했다.

아이를 백인한테 맡긴 지 3년이 지난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백인 남자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의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도 모르고, 말수가 적은 아이로 변한 것을 조금 느꼈지만 항상 바빠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싫어하고 혼자 있으려고만 했고, 아버지가 아이를 만지려고 하면 질겁하고 놀라곤 하였다.

그러더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는 더 우울해졌다. 심한 우울증에 빠져 술과 담배를 하더니 마약까지 하게 되었다 .

급기야 카운슬러를 찾아가니 아들은 그때까지 숨기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6세 때부터 9세까지 아들은 백인 청년과 영어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섹스를 강요당했던 것이었다.

아빠가 팔만 잡아도 부들부들 떨며 뿌리치던 이유를 아이의 부모는 그때서야 알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절하여 15일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들은 항문수술을 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구나 싶었다. 어찌하여 소중한 아들이 공부하는 곳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고, 무얼 배웠는가를 물어보지도 않았던가.

비단 그 아이뿐 아니라, 더 한 일을 당하고도 말 못하고 그늘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녀는 없는지 가슴이 아파 왔다.

지금 그 모자는 어디서 사는지, 그 아들의 마약중독은 고쳤는지 궁금하다. 아이들 교육은 끊임없는 관심이고 사랑이다

김사빈
하와이 문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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