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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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권 사부님

2008-07-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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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건강을 위해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도장은 할리웃의 타이 타운에 있다. 타이 타운은 식당이 많고 복잡한 데 태극권 도장 안은 별세계다.

주택가 뒷길의 도장 문을 들어서면 높은 천정이 보이고 무술도구들이 사방에 세워져 있다. 콘크리트 바닥은 특이하게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아 돌거나 밀거나 하는 무술 동작을 익히는 데 불편함이 없게 되어 있다. 그 대신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금세 비틀거리며 미끄러질 수도 있다.

나의 사부님은 금년 85세가 된 제임스 윙 우 라는 중국계 할아버지인데 레탈 웨폰 4(Lethal Weapon 4)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셨다. 할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수십 년간 무술을 했기 때문인지 자세도 바르고 머리도 명석하다.


수십 명이나 되는 제자들 개개인의 사정은 물론이고 양가 태극권 108식 중 어느 동작까지 공부했는지를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항상 도인 같은 약간 장난기 있는 천진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사부님이다.

아주 오래 수련을 했거나 완전 미국계(?) 백인 제자들은 사부님을 ‘Jim’이나 ‘James’라고 부르지만 나 같은 애송이 동양계 제자는 감히 그런 엄두를 못 내고 ‘Sifu’라고 ‘사부’의 광동식 발음으로 부른다. 아마도 사부가 과거 광동에서 무술을 배웠기 때문에 그런 호칭을 쓰는 것 같다.

사부의 제자들 중에는 할리웃 배우나 가수들도 있고 오랫동안 태극권을 공부해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제자들도 꽤 된다. 한번은 클래어런스라는 머리가 허연 흑인 재즈 음악가에게 “이 도장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 하고 물었더니 1976년부터라고 해서 놀랐다.

바쁜 삶을 살면서 건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몸은 오랜 시간 한 자세로만 있으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분에 기혈순환이 잘 안되어 불편하게 될 수 있다. 특히 통증은 어느 부위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태극권같이 무리 없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전신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은 자세를 바르게 잡고 몸을 조화롭게 하여 순환을 돕는다. 얼핏 보기에는 쉬울 것 같은 동작이지만 제대로 하면 서서히 움직이는 동작이기 때문에 힘과 유연성을 키우면서 등뼈, 힘줄, 근건. 관절운동을 하게 한다.

태극권 도장을 출입하는 제자들에게 사부가 하는 말이 있다. “이 문안에 들어오면 21세기는 문 밖에 걸어 놓아라. 이 안은 18세기이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말도 자주하신다. 세상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오직 태극권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을 비우게 되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나도 그런 이유로 태극권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그냥 행동으로 옮기는 지혜를 배우면 건강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화도 지킬 수 있다.

서예지
문학박사·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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