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

2008-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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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직장 덕에 꽤나 많은 나라를 두루 여행했다. 3번의 여행을 통해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모두 6개국을 다녀왔다. 어디가 제일 좋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 8년 동안 일편단심 답했던 곳인 ‘울릉도’라 말하겠다.

2000년도 첫날 새벽, 어둠, 추위, 높은 파도를 헤치고 붉게 떠오르는 해를 맞았던 울릉도. 그곳엔 추억이 많다. 항구에 내리자마자 한눈에 들어왔던 대형 오징어 동상. 전깃줄에 나란히 달린 대형전구들로 캄캄한 밤바다를 황홀하게 밝히던 오징어잡이 배. 울릉도에선 바닷가를 벗어날 수 없으니 거의 모든 추억이 바닷가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역시 바닷가에서 있었던 그 일은 더욱 잊을 수가 없다.

아내, 아들과 함께 울퉁불퉁한 돌이 널려진 섬 주위를 걷노라니 해녀들이 바다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해산물을 잡고 있었다. 근처의 큰 바위 쪽엔 테이블과 자리 몇 개가 손님을 맞고 있었다. 해녀들이 금방 잡은 해물을 사서 생으로 먹는 곳이었다.


한 겨울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아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두 여성이 해산물이 잔뜩 쌓인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가 우리가 지나가자 불렀다.
“이것 좀 드시겠어요? 우리가 배불리 먹었는데도 아직 이만큼 남았어요”
아내는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국 중서부 도시사람 중 바다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먹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너무 아까웠지만 나는 망설여졌다. 비위생적이지는 않은가, 먹고 나서 아프게 되는 건 아닐까 … 내가 눈치를 줘서 아내는 적당히 거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주, 또 다시 생 해산물을 대하는 일이 생겼다. 영국해협에 면한 프랑스 북서부 해안 도시 컹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아내와 함께 갔었다(프랑스에 있었으니 영국 해협이 아니라 그들이 부르는 대로 ‘소매(the sleeve)’라 해야 옳겠다). 우리를 초청한 교수가 생 조개, 생굴, 찐 소라, 찐 가재, 찐 대게, 찐 쇠고둥, 찐 왕새우와 작은 새우,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갑각류가 담긴 미니보트를 주문하여 저녁상을 차렸던 것이다.

내겐 좀 무서운 광경이었다. 마치 수술대처럼 식탁 위에 온갖 쇠 연장이 놓여 있었다. 죄서 부러뜨리는 기구, 속살 빼내는 기구, 자르는 기구 등. 반 토막 난 대게가 내 접시에 놓여졌다. 합석한 사람들 모두가 그 기구들로 게살을 선수처럼 발려 먹었다. 그래도 챔피언은 단연코 나의 한국인 아내였다. 제일 작고 납작한 게 다리에서까지 살을 남김없이 쏙쏙 잘도 빼 먹는 것이었다. 프랑스인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가장 먹기 쉬운 생 해물만 골라 먹다가 원산지를 묻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원산지? 아, 어제 우리가 갔던 데에요. 포르탕베생(Port-en-Bessin).”
그곳에서 봤던 일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그 동네 선착장에서 몇몇 주민이 낚시 중이었다. 그런데 물 위에 뭔가가 둥둥 떠다녔다. 해초, 플라스틱 병, 음식 찌꺼기 등으로 대개는 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멀리에선 땅, 바다, 하늘의 정경이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바닷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곤 입맛이 딱 떨어졌다.

병나면 어쩌나?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쓴 우스개 책에서 프랑스인들의 비위생적 음식습관을 다룬 얘기들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먹는 프랑스빵 바게트는 포장되지 않은 채 마룻바닥이나 빵집주인 겨드랑 밑을 거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치즈를 껍질 벗겨 먹는데, 그 껍질이 곰팡이, 재, 흙먼지라는 것이다. 하긴 치즈 자체가 썩은 우유에 박테리아가 자라면서 만들지는 게 아닌가. 그래도 우린 그 빵과 치즈를 사랑했다.

나는 최근에야 비위생적 음식을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 이제껏 여행 중 아팠던 일이 단 한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 한 절의 완공 축하점심을 먹고 몹시 아팠는데, 그 절에서 가졌던 경험을 생각하면 아플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최근 한국에선 미국산 쇠고기로 난리를 겪고 있다. 건강상의 위험이 다소 과장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고기 공급’이 마치 ‘오일 공급’이나 ‘물 공급’처럼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전 세계가 심각한 ‘건강 공격’을 받게 된 것이 확실하다. 나는 결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막 잡힌 갑각류 식사를 하듯 고기 음식 저녁도 가끔씩 귀하게 한다면 우리 모두 더욱 균형 잡힌 몸과 지구를 갖게 되리라.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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