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을 대학에 보내며

2008-06-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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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시즌이 되어 많은 축하의 소리들이 들린다. 나도 벌써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재미있었던 추억과 “잘 키우고 있는 건가?”싶은 걱정으로 가슴을 쓸었던 시간들이 필름 같이 지나간다.

맏이인 딸을 키울 때는 교육을 잘 시켜야 된다는 마음에 너무 긴장해 있었다. 가능한 한 아이를 바쁘게 만드는 게 교육에 성공하는 길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하느라 힘들었고, 우리 부부는 기대를 너무 크게 하다 보니 실망도 많았다.


딸이 사춘기 때 이상한 옷차림이나 장신구만 해도 “혹시 아이가 불량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었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길 가에서 딸아이를 기다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딸의 개성 있는 탐험이었고 성인으로 독립해 가는 귀중한 시도였다. 아내는 딸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짧은 여행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과정을 지나 딸은 자기 길을 찾고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떠났다.

딸을 학교로 데려다 주며 감사의 마음과 더 사랑해 주지 못하고, 믿어 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편지에 담아 건네주었다. 딸은 이제 부모에게 고마워하며 책임감 있는 대학생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앞으로 제3세계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둘째인 아들을 기를 때는 아주 인상적인 조언을 해주신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미국 할머니이셨는데 “아이를 너무 훈련하고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즐기라”고 하셨다. 또 다른 한 분은 “자녀에 대한 사랑의 저장탱크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 전에는 절대로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지 말라”는 소아과 의사였다.

같이 즐겁게 지내라고 아들을 나에게 맡겨주신 조물주의 뜻에 감사하며 아들의 존재 자체를 즐기려고 했다. 또 “사랑의 저장 탱크에 사랑을 가득 채운다” 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들에게 잔소리나 야단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드물게 한 마디씩 했을 뿐이었다. 학교 빼먹고 바다에 파도타기 하러 가겠다고 할 때나, 숙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안 할 때도 참고 참으면서 아들이 부모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느라 노력했다.

지난주에 있었던 졸업 감사 파티에서 아들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내용을 들어 보았다. 무슨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숙제를 하라고 잔소리 안 한 엄마에게 고마웠고, 화를 내야 될 때 참은 아빠의 인내심과 사랑에 감사한다고 했다.

부모와의 좋은 관계가 아이의 성격이나 인격형성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아들은 잘 웃고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관계 형성을 잘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 주어 감사하다.

아들이 대학에 가서 한층 깊은 학문에 몰입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졸업장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조물주가 만든 가장 귀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폭넓은 지식을 배워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절대자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제한된 존재라는 겸손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집 떠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레몬 나무를 옆 마당에 심어 놓고 그 나무가 어서 속히 자라 싱싱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오늘도 물을 준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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