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하는 말의 머리

2008-06-12 (목)
크게 작게
우리 이웃엔 55살의 한 남자가 산다. 그는 미혼으로 혼자 살며, 매해 겨울이면 친구 하나와 4개월 정도 타일랜드에 머문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가 마당에서 잔디를 깎거나 일하는 걸 봤을 때 타일랜드 여행에 대해 물어 보겠는가? 아니면 물어 보는 게 왠지 쑥스러워서 타일랜드에 대해선 아예 질문을 안 하겠는가?

대개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남자들끼리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땐 어떤 의미에서 의심 받을 여지가 있다. 노르웨이나 일본을 간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가까운 이웃으로서 그에게 타일랜드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렇긴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될까봐 은근히 걱정하곤 했다. 그런 내 생각은 물론 온당치 않았다. 그를 무조건 스테레오 타입 화하며 성을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니. 그는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

지난 달 나는 처음으로 동남아시아에 갔었다. 4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로 구성된 대학 관련자들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현지에 사는 서양 사업가 2명을 만났다. 한 사람은 사이공에 사는 60대 미국인이었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베트남 여성과 사귀었던 경험을 얘기해 주었다. 오래 사귀었지만 결국 그녀 가족과의 어려움 때문에 헤어지고 말았다 한다. 그녀의 나이는 그의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다.

후에 일행 중의 한 미국여성이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다는 얘기를 내게 했다. 그 둘의 관계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십분 이해되었다. 나 역시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의 여자가 미국여성이었다면 우리 둘의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일본여성 혹은 한국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둘의 나이가 비슷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가 그녀의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면?

이 글을 쓰는 동안, 뉴스에선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 선택에 대한 추측이 거론된다. 버지니아 상원의원 짐 웹의 이름도 거론된다. 그는 다소 복잡한 배경을 지녔다. 언론은 아직 그의 부인이 베트남 여성이고 그가 베트남어를, 그것도 ‘유창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얘기다. 미국 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될 정도의 높은 직책을 지닌 사람이 비 유럽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국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될 때 또 다른 시각을 지니게 된다. 좀 더 심도 있는 시각을 갖는 훈련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가 베트남어를 정말 ‘유창하게’ 한다면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여행 중 사이공에서 나는 한 베트남 사람과 잠깐 기본발음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언어학을 공부했고 몇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베트남 발음을 곧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오산이었다. 창피할 정도였다. 아마도 47살의 내 혀는 새 기술을 배우기에 너무 늙었나 보다

사이공에서의 둘째 날 우리는 영사관에 가서 한 사무관을 만났다. 내 나이 정도의 미국여성이었다. 미팅이 끝난 후 그녀는 우리를 안내하고 다니던 베트남인에게 베트남어로 몇 마디 했다. 그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영어로!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한국인들에게 한국말을 하면 내게서 한국말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 한국인들도 영어로 대답한다고. 그리고 그 반응에 기분이 상한다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말하는 말의 머리’에요. 갑작스레 아시아 말을 하는 미국인 앞을 걷는 것은 마치 갑작스레 말하기 시작하는 말의 동상 앞을 걷는 것과 같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방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깜짝 놀라게 하는 거죠.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을 말하게 만드는 게 아니고 오히려 말을 막히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동양과 서양이 만날 때엔 두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1)성별 (2)언어. 그 둘 다가 입술, 혀, 머리, 문화와 관계한다. 그 둘 다는 강제적으로 취해질 수 있다. 선과 악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외국여행을 하는 미국인들이 오직 첫째 보다 둘째와 관련해서 ‘자유분방’해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