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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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왜 문제인가

2008-06-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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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만약 자신에게 여섯 살 난 아이가 있다고 치자. 이 아이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대학원까지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든다. 즉 자녀는 아르바이트 같은 일시적인 수입을 제외한다면 거의 20년 정도 수입은 없이 지출만 가져오게 되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니까 학교를 보내지 말고 6살부터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구두를 닦든, 쓰레기를 줍든, 무슨 일이든 시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에게 노하우가 쌓이고 돈 버는 방법을 몸으로 습득하면서 나름대로 본인의 감각을 가지고 20년 동안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가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주말이면 동네에서 조기 축구를 한다 치자. 이 조기축구회가 이웃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음료수 몇 병 내기축구를 할 수는 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과 내기를 걸고 축구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할 수만 있다면야 영광이지만 동네 조기 축구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경쟁이 되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승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저자인 장하준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개발도상국, 선진국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빗대어 사용했던 이야기이다. 여섯살 난 아이를 빨리 취업전선에 내보내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는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동네 축구팀과 프로축구팀이 자유롭게 경쟁하자는 식은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지만 나쁜 사마리아인(선진국)들은 높은 곳에 먼저 올라간 뒤 다른 나라들은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도록 올라오는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이러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나라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각종 규제와 관세들을 철폐하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모토로 삼아 경제 정책들을 펴나가라며 갖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은 ‘개방’과 ‘세계화’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조류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장 교수의 경제학 이야기 아홉 마당인 것이다.

이형열(알라딘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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