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각가 카렌 강 씨

2008-05-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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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예술 묻어나는 작가 되고파...

제11회 S.O.F.A 페어에 참여하는 조각가 카렌 강(강신욱·사진)씨는 1살 때 미국에 와 33년만인 지난 2005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

처음으로 본 한국,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젊은 미술가들에게 강씨가 처음으로 받은 인상은 ‘뉴욕과는 다른 활력’이었다. “제가 태어난 서울에서 본 예술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지리산 기슭에 조각 공원을 만든 중견
작가와의 만남 등은 저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강씨는 한국말을 하지 못하지만 ‘신욱’이라고 적힌 한글명함을 늘 사용한다. 신욱이라는 남자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와 뉘앙스를 무척 좋아해서 직접 이름을 디자인한 고어체 타이포그래피로 만든 작품도 상당수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과 예술가라는 직업 모두 사실 강씨의 부모가 원치 않던 것이었다. 이국땅에서 오직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만 헌신했던 전형적인 이민 1세대 한국인 부모처럼 강씨의 부모도 강씨가 의대나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인으로서 주류사회에 완벽하게 편입되기를 바랐다.


부모의 바람대로 아이비리그에 진학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함께 20세가 넘으면서 자연스럽게 강씨의 내면에서 자라났다. 강씨는 2005년 노르웨이에 석달동안 머물면서 4톤짜리 바위를 둘로 쪼개 남북한과 DMZ를 상징하는 조각물을 눈밭에 만들기도 했다.

뉴저지에서 자랐고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는 등 줄곧 뉴욕에서 공부하고 작업한 강씨는 전 세계의 젊고 재능 있는 예술 지망생이 몰려드는 뉴욕을 “한 때 지루했다”고 말한다. 왠지 활력이 떨어지고 모두가 유행을 추종하는 것 같았다는 강씨의 느낌은 아직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도
못했으면서 의욕만 충만한 젊은 예술가의 오만과 치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씨는 뉴욕보다는 유럽과 멕시코, 한국 등 자신이 여행한 곳에서 더욱 예술적인 영감을 얻어왔다. ‘공공미술가가’(public artist)를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것도 “예술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유럽의 공간들”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뉴욕이 예술의 중심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예술작품을 향유하려면 대부분 갤러리나 박물관같은 특정 장소에 가야한다”며 “그저 삶속에서 예술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뉴욕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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