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 어느 멋진 K 목사의 일기

2008-03-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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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목사(샬롯 아름다운 참빛 교회·시인)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흩어지기 쉬운 것은 의리(義理)이다. 목사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가 아는 K 목사는 적어도 목회 의리 하나는 깔끔하다.

그가 L.A.에서 유학생으로 있을 때이다. 그는 교단이 다른 감리교회의 교육목사로 임직하고 있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교회가 두 파벌로 나뉘어 시끄럽게 되었다. 그런 경우 대개는 담임파와 반대파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담임의 반대 세력의 주동자 중 한명이 K 목사의 어릴 적부터 친구요 그 교회에 소개를 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말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30여 년 전에 한집에 벤즈를 몇 대씩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한 교회를 이루어 나가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그들에게 붙으면 땡잡는 일이었다. 당시 영주권도 얻고 생활 기반도 든든해지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K 목사는 기로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길은 의리를 택했다. 여러 차례 자기편에 들라 권고하는 친구의 요청을 물리치고 담임목사 편에 섰다. 그 길은 어려운 길이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갈라지고 능력이 없어 교육목사 사례비를 줄 수 없
기 때문에 그 교회를 떠나야 했다. 며칠 만에 그는 보따리를 싸서 뉴욕으로 떠났다. 그 후 그가 뉴욕으로 가서 어느 교회 부목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그런 일이 K 목사와는 상관없이 일어났다. 그는 다시 짐 보따리를 싸고 한국으로 향한다. 담임 목사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일 년 여 가까이 머물며 자기가 몸담았던 교인들이 다 정
착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 체류 중 그가 좋아하던 처녀도 시집가 버렸다. 그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개척교회를 시작한다. 융통성 없는 그는 결혼도 제대로 못하다가 뒤 늦게 결혼을 한다. 결혼예식이 막 진행되려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타나났다. 그는 L.A.에서 목회를 계속하던 K 목사가 의리를 지켜주었던 옛 담임 목사였다. 그리고 멀리 시카고에서 온 손님인 초등학교 6학년 은사도 있었다. 그 후 그가 섬기는 교회가 조금 안정되면서 부목사들을 길러내어 한국의 여자 명문 E 대와 H 신학대학원 교수로 키워 보낸다. 물론 하나님께서 길러 내시고 그들이 잘했지만 숨은 K 목사의 뒷받침이 크게 그들을 이바지했다.

의리가 밥 먹여주나? 흔히 듣는 이야기다. 오랜 옛날 한 사람이 옥(獄)에 갇혀 있는데 마지막으로 늙은 부모를 보고 싶어 친구를 대신 잡아 두고 부모를 만난 후 왕과 정한 시간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 온 이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를 보고 감동된 왕이 특사로 사면해 주었다는 흐뭇한 이야기가 있다. 의리를 지키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원초적 본능과 순간적 이기심으로 의리를 저버린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지키고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던 예수님. K 목사는 적어도 자기 일생의 직업인 동역자 목사에게만은 의리를 지켰다. 며칠 전 그가 몸담았던 미국장로교(PC USA)교단에서 33년의 목사 활동을 끝으로 명예로운 은퇴식을 가졌다. 어느 멋진 K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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