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님들과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북미의 역사와 문화 탐방
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 미디어교사/ 새한국문화학교 디렉터)
우리 한민족이 지난 5,000년간 간직하고 전수해온 한국의 전통문화와 언어를 한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에 와서도 유지하고 후대에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한민족보다 약 300년 먼저 유럽에서 캐나다에 이민 온 스코틀랜드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언어를 계승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노바스코시아 현지답사를 통해 그간 알아보았다.
(1) 켈트문화 계승을 위한 겔릭칼리지 (Gaelic College of Celtic Arts and Craft)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주의 베덱에 있는 알렉산더 벨 국립사적지를 뒤로 하고 캐봇 트레일을 따라 약 20분간 운전하니 세인트 앤 만(St. Ann’s Bay)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겔릭 칼리지(Gaelic College)가 나타났다. 이 때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 학교의 입구에 서서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남자들이 주로 입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백 파이프를 불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겔릭 칼리지는 캐나다 이민자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쓰던 스코틀랜드 겔릭(Scottish Gaelic)어와 켈트(Celt)문화를 보전하고 후대에 전수하기위해 1938년에 멕켄지 목사에 의해 케이프 브레튼 섬에 세워졌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지금은 북미에서 겔릭어와 켈트문화를 가르치고 전수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겔릭어는 켈트어의 한 갈래이다. 스코틀랜드의 겔릭어 사용은 5세기 경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스코트족이 스코틀랜드에 정착하게 되면서 시작되는데, 다른 켈트어에 비해 아일랜드 겔릭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18세기 초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합병돼 대영제국을 이루고 나서 킬트, 백파이프 등 켈트족의 전통문화와 함께 스코틀랜드 겔릭어의 사용이 금지됐었다. 이후 겔릭어가 점차 쇠퇴돼 현재는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와 서해안의 섬들에서만 일부 사용되고 있다.
2001년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스코틀랜드에서 약 9만명의 사람들이 겔릭어를 약간 사용할 수 있었다. 캐나다의 노바스코시아에서 약 900명, 미국에서 1,600명,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약 822명이 겔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점 사라져가는 이 언어의 부활을 위하여 2005년에는 겔릭어가 스코틀랜드의 공용어로 지정되었다.이곳 미국에 사는 우리 한인 이민 1세들은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잘 알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의 몇 퍼센트가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잘 알고 쓸 수 있을까? 앞으로 200-300년 후에 미국에 사는 한인들 중 얼마나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고유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전수받아 유지하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미국의 한인 이민은 1903년 하와이에 있는 사탕수수밭에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 시초였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3년 동안 약 7,000여명의 한국인들이 미국에 이주했다. 2000년에 시행된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미국에 123만 명의 한국인 (미국계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포함)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학자들에 의하면 현재 약 180만명의 한국인이 미국 내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불과 100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3년 이민 100주년을 맞이한 미주 한인사회는 우리 후손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물려주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특히 한인사회 각지에서 한국정부의 지원과 한인사회의 적극적인 관심 등으로 한국문화학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교육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현재 미국 내 총 747개의 한글학교가 있고 4만3,000명의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그 중 뉴욕 지역에는 2005년 현재 123개의 한글학교가 있었으나 2007년 가을 현재
94개로 줄었다고 한다.)재미한국인의 숫자가 약 180만명일 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의 숫자가 4만3,000명이라고 하면 한국인 1,000명중에서 23명이 한국어를 배우는 꼴이다. 또 대략 학령아동(7세-18세)을 전체 한인인구의 20%로 가정하면 학령아동 총 36만 명 가운데 약 12%만이 한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엄청난 교육열에 비하면 모국어교육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어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고유의 켈틱 문화와 겔릭어를 배우는 겔릭 칼리지는 이름처럼 정규대학은 아니다. 이 곳은 성인들과 아동들을 위한 겔릭어, 겔릭노래, 백파이프, 겔릭 춤, 바이올린, 하프, 피아노, 직물 짜기 등의 코스를 개설하고 있으며 학기는 여름학기와 3월 단기학기가 있다. 겔릭어를 배우고자 하는 성인들을 위한 3주 집중훈련코스는 물론이고 온라인코스도 제공하고 있다. 부설 클랜 박물관에는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켈트족의 역사와 발전의 자취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1820년 경 세인트 앤 지역에 처음으로 이민 온 스코틀랜드 고지인(Scottish Highlanders)들의 후예들이 쓰던 유물들(artifact)과 전쟁 등 당시 생활상을 나타내는 무기와 가재도구 등 여러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1600년대부터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각 씨족(氏族:clan)이 고유한 문장(紋章) 또는 장식으로 사용한 타탄(tartan) ? 의례용 타탄과 사냥용 타탄이 있었음-들이 실물크기로 전시되고 있다. 타탄은 색창살무늬 또는 그러한 무늬의 직물을 말하는데 타탄체크는 스코틀랜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남자들이 입는 체크무늬 치마(킬트)에서 볼 수 있다. 디자이너들이 이를 일반 옷감에 적용하여 일반인들도 많이 애용하게 되었으나 이
체크무늬의 원조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거주했던 씨족들의 고유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관람객들은 이 클랜 박물관에 마련된 파이프 밴드, 바이올린, 피아노, 직물, 겔릭노래, 겔릭이야기, 겔릭춤 등의 코너를 각각 들러 겔릭 전통문화를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다.미국땅에 살고 있는 우리 이민 1세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우리의 전통문화와 언어를 통해 이곳에서 태어난 이민 2세들에게 잘 물려줘야만 그들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전
수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미국에서 3대, 4대 계속 이어져 내려갈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의 후손들이 세종대왕이 500년전에 창제한 한글은 물론 우리의 정체성을 점점 잃게 될지도 몰라 사뭇 걱정이 된다.
겔릭 칼리지를 뒤로하고 케봇 트레일을 따라 케이프 브레튼섬의 고지대로 가는 차속에서 저자는 200년 후 미국 속의 한국전통문화와 한국어를 한인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학교들과 박물관들이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