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젊은이들
2007-11-05 (월) 12:00:00
백만금과 바꿀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 한 마디
“선아,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단다. 이 말 뜻 알겠제?”
저를 공주사범대로 보내시면서 해주신 돌아가신 어머님의 말씀이십니다. 제가 누구보고 제 똥을 먹으라고 하겠습니까 마는 그 뜻을 절절이 느끼면서 선생으로 늙어가는 저는 요즈음 제가 정말 진정한 스승으로서 제 학생들 곁에 제대로 서 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은 인터넷이나 온라인을 통해서 독학을 통해서 얼마든지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줄 수 있는 마음과 체온을 주지 못합니다. 지혜와 덕을 주지 못합니다. 매 시간 강의에 들어갈 때마다 되새기며 심호흡하고 이 말씀을 되새깁니다. 젊은 나이의 학생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이러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덕만이 아닌 것을 저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로 관심과 따뜻한 말과 웃음이었습니다. 선생은 가난하기가 운명이니 선생이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돈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고작 학교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얼굴을 맞대는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제가 가장 어려운 일에 봉착하는 학생들의 우울증을 경고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생체 의학적으로 우울증은 대뇌의 화학물질의 조화가 제대로 안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조울증의 경우에 빠진 우울증은 더욱 돕기가 겁납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에게 붙들고 가는 경우가 많지만 제가 도와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만이 줄 수 있는 ‘무조건의 관심과 따뜻한 말씀과 웃음’ 그것만이 학생들의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천만 다행하게도 핸드폰이라는 것이 있어서 하루에도 스물 네 시간 연락이 되니 자주 통화해 주십시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끝없는 사랑과 자비로 젊은 자식을 평안의 피안으로 데리고 갈 수 있는 분은 부모님 뿐입니다.
어머님께서 제게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선생이라는 그 자체가 얼마나 인생에서 어려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인가를 슬슬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랑과 칭찬의 말과 웃음’ 이 값진 것인가를 배우면서 부모님의 따뜻한 눈길 한 번이 이 선생의 백번 칭찬 보다 더 값진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가장 ‘감성적’인 시기의 학생들에게 ‘무조건’ 의 사랑과 칭찬을 따뜻하게 안겨주는 방법입니다. 이 선생에게 전화하는 경우를 보면 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사연을 가슴에 품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을 때, 아무도 자기를 찾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을 때, 몸이 너무 아픈데 옆에 사람이 없어서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을 때, 애인이나 배우자와 헤어져서 콱 죽어버리고 싶을 때, 차가 길거리에서 고장이 났을 때, 교과서 살 돈이 없을 때,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을 때, 밤중에 일어나 앉아 이유없이 몹시도 슬퍼 잠을 잘 수 없을 때 등등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무엇 그렇게 절망하고 좌절하고 죽고 싶어 하겠느냐고 하시겠지만 인간의 일생 중에 가장 죽고 싶은 충동이 나는 것은 사춘기부터 21세까지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많은 수의 학생들은 위와 같은 경우에 부모님께 폐가 될까봐 연락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각박한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우울증에 빠져서 죽고 싶어하는 것이 마치 사치같이 느껴질 때도 있으시겠지만 물질만능의 자본주의의 천국에서 백인이 아닌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국후예인 이 젊은이들에게 부모님의 무조건의 사랑을 알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도 계속해서 알려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야아, 오늘 어쩐지 네가 보고 싶어 그냥 전화했어,’ 문자로 사랑을 날려 주시거나 웃기는 카드 한 장 사서 사랑을 알려 주십시오. 학생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너무도 잘 아시는 부모님께 드리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정 정선
<시인, UC Santa Barbara 한국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