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발하고 유쾌한 부자할머니 납치사건

2007-11-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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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 덴도 신 지음

82세의 할머니가 납치당했다. 할머니가 납치된 이유는 단 하나, 몸값이다. 돈이 많은 할머니였다.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에 유괴범들은 할머니를 노렸고, 계획대로 할머니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돈만 받으면 할머니를 풀어주고 제각각 살길 찾아 떠날 예정이었다. 유괴범들은 전부 3명으로, 감옥 안에서 만났고, 범행을 모의했다. 셋 다 돈이 필요했다. 유괴범들은 몸값으로 5,000만엔을 받아낼 작정이었다. 두목이 2,000만엔, 나머지 두 사람이 각기 1500만엔씩 나눠 가질 작정이었다. 거기에서 단 한 푼도 깎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몸값 얘기를 들은 할머니가 대뜸 성을 낸다. 내 몸값이 그것밖에 안되느냐고. 자기가 제법 비싼 사람이라면서. 그럼, 할머니가 생각하는 몸값은? 놀라지 마시라. 100억엔이란다. 유괴범들 뒤로 넘어간다.
그래서 이 유괴범들, 할머니의 가족들에게 100억엔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세상을 살만큼 살고 거기에 지혜까지 뛰어난 할머니는 유괴범들을 한 손에 확 휘어잡고 유괴범들을 뒤쫓는 경찰들과 두뇌게임을 벌이기 시작한다. TV 방송에 생방송으로 출연해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또 어떻게 100억엔이라는 돈을 건네 받을 것인지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면 또 모를까 유괴당한 사람이 오히려 유괴범들을 지휘한다는 기발한 스토리는 저자인 덴도 신만이 상상해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독자의 허를 찌른다.
유괴를 다룬 영화나 책들은 많고 많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벌이는 일 즉 인질극을 보고 나면 엄청난 분노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덴도 신이라는 작가는 이런 칙칙하고 기분 나쁜 유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굉장히 기막힌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유괴는 기발하고 유쾌하고 즐겁다.
걸작 추리 소설의 조건, 즉 기발하고 스케일이 큰 사건,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 살아있는 캐릭터, 정제된 문체와 박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예상을 뒤엎는 결말,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일본에서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으로 수차례 제작되었으며, 한국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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