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년만의 여행

2007-08-25 (토)
크게 작게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이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를 일주일씩이나 비우는 덕분에 10여년만에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던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그 옛날 직장생활을 해 휴가를 알뜰히 이용할 수 있었을 때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었다. 젊어 기운이 철철 넘쳐 오랜 시간 운전을 할 수 있었으니 장대한 로키산맥이 이어지는 캐나다부터 미국에 이르기까지 갓 태어난 아기들까지 이끌고 안 다녀본 국립공원이 없었다. 시부모님들께서도 그때만 해도 젊으셔서 스테이션왜건에 살림살이 꽉 채우고 애들까지 도합 6명이 꼭 끼어 앉아 산을 차례로 정복하듯 온 국립공원을 훑고 다녔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시간에 쫓기자 나는 애들만 데리고 수학여행 하듯 다녔는데 애들이 크면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빠가 빠진 여행은 다시는 안 가겠다 선언했다. 그러니 근 10년만이다. 버펄로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연결편을 놓쳐 비행장에서 장시간 기다리며 여행을 시작했는데 돌아올 때도 비바람에 비행기가 뜨지 못해 불편한 의자에 한없이 꾸겨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불편해도 지루한 일상생활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이애가라에 도착해 마중 나오신 시누이의 남편이자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신부의 아버지에게 동행했던 시어머니를 인수인계하고 하루에 4~5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대장정의 길을 떠났다. 어머니께서는 도저히 힘 드시다며 오랜 자동차 여행은 사절하시니 신부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이동하시기로 했다. 따님과의 오랜만의 해후에 기운이 나셔서인지 더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셨다.
미니밴을 빌려 나이애가라 구경 후 토론토를 거쳐 ‘천섬’(Thousand Island), 몬트리올, 퀘벡시, 나중에 돌아오며 토론토보다 더 서남쪽에 위치한 누님 댁까지 수천마일이 이어지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척척 운이 닿아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놀라움에 지루한지 몰랐다.
몬트리올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산속의 휴양지 마을에서 불어권의 시집쪽 식구들과의 웨딩 리셉션에서 남편이 춤을 추는 모습을 생전처음 보고는 장난기가 발동해 손을 이끌며 밤새 무대 위를 휘젓고 다녔다. 중세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몬트리얼에서는 여름내 재즈 등 각종 페스티벌이 있는데 신랑의 안내로 끌려가 길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디스코도 춰봤고 고색 찬란한 아름다운 성당들을 방문하며 숙연함을 느끼기도 했다,
시누이네는 조그만 가게를 하는데 이층이 살림집이었다. 아무도 없는 듯한 조용한 시골에서 두 딸 장성해서 내보내고 백인들과 동화되어 사는 두 부부 모습이 경이롭고 정말 사는 방법이 여러 가지구나 하고 느꼈다. 여행을 하고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나의 집이 최고인 것 같다. 온갖 인종이 어울려 사는 캘리포니아가 내 고향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집에 한국 신문이 배달되고 맛난 한국식당이 무수히 있으며 한국 TV, 라디오 방송 등 생활의 불편함이 전혀 없는 LA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번개처럼 잠깐의 시간이었으나 상큼한 것이 에너지가 충전된 듯하다. 특히 남편과 함께 하니 더욱 좋았다. 그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웬만해서 시간을 내려하지 않으니 혹시 그의 조카들 중 유럽 쪽에서 결혼식 한다는 소식은 없을까. 이번 가을 한국 출장이라도 간다면 꼭 따라갈 것이다.

애니 민 / 다이아몬드바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