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함께 읽는 감동
2007-08-18 (토)
처음처럼-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랜덤하우스 펴냄
오랫동안 서예를 했던 아내 덕에 몇몇 그 친구 서예가들을 알고 있다. 작년 한국 방문 시에 그 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개가 일가를 이루어 대가 소리도 듣고, 서예부문 국전 심사위원(장)도 하고 후학들을 길러내는 일에 열심인 것은 겉으로 볼 때 알 수 있었지만 속사정은 겉보기와 매우 달랐다. 서예학원이나 국전 등의 공모전을 통해서 수도 없이 많은 서예가를 양산했지만 이 사회에 서예가의 설자리는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할 글씨쓰기가 ‘글자’쓰기로 전락해버렸을 때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위기인 것은 진작 예견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것을 당사자의 절박한 하소연으로 들을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원래 서예가 글씨 쓰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혼이 없는 예술, 사상이 받쳐주지 않는 예술이란 공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소주 이름이 되기도 한 ‘처음처럼’이란 제호를 쓴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은 여타 서예가의 그것과 출신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자기성찰의 진수를 보여준 선생의 글씨는 매우 편안하면서 힘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또 깊은 성찰을 통한 깨달음과 그것을 표현한 글, 편안한 글씨와 소박한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져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그 감동이 머릿속 이미지로 남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을 좋아 하지만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의 서화 에세이집이 나와서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작고 평범한 사물 하나에서도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글을 그림과 함께 읽는 감동은 어떤 예술작품이 대신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기에 일독, 아니 머리맡에 두고 재독 삼독을 권한다.
알라딘서점 대표 이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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