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선의 재상 유성룡은 누구였나

2007-07-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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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설득과 통합의 리더 / 이덕일 지음

아내의 외할머니가 유성룡의 종손녀라 그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15년 전쯤 일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조선 선비 살해사건>등 잇단 역사적 저술로 역사 바로 잡기를 통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덕일 씨의 <유성룡-설득과 통합의 리더>는 이런 개인적인 연으로 해서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이덕일씨 저술은 매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책 읽듯이 매끄럽게 넘어간다. 또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사실에 의문을 던지고 이를 정면 돌파하는 ‘힘’을 보여줌으로써 읽는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 책에는 유성룡에 대한 속설 즉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유성룡이 이를 반대했다는 설이 반대 당파에 의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얘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논증하고 오히려 유성룡이 없었으면, 그래서 이름 없는 무장에 지나지 않았던 권률과 이순신을 천거하지 않았더라면 저 유명한 행주대첩과 한산대첩은 불가능했음을 일깨운다.
책을 통해 유성룡은 성리학자이면서도 양명학의 실용적 사고를 받아들여 열린 사고를 하는 제대로 된 지식인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전란이 초래된 원인이 국제정치적 역학에도 있지만 변변하게 저항 한번 못해보고 왜구의 침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란 사대부들이 계급적 이해관계의 틀에 갇혀 조금도 희생을 하지 않으려 했던 데도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쑥밭이 됐음에도 노비를 내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양반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후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 노비들을 양민으로 만들려고 했고, 사대부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주려고 했던 이가 유성룡이다. 당연히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유성룡은 단호했다.
또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허무하게 내준 선조는 아예 명나라로 도망치려고 했었다. 신하들도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반대한 이가 유성룡이다. 유성룡은 선조와 신하들을 설득해 남아 있도록 만들었다.
유성룡이 설득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돕기 위해 왔지만, 사실상 나라를 갈기갈기 찢으려 했던 명나라 장수들과 명나라 조정을 설득한 것도 유성룡이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인물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형열 알라딘유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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