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크통에 ‘부케의 비밀’이 있다

2007-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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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계피·커피향 등
와인 숙성될 때 서서히 우러나
프랑스산 오크 품질 최고
고비용탓 스테인레스로 대체

“네~, 이 와인은 바닐라 향이 풍부하며 계피 향과 커피 향과 태운 내(훈제)가 은은하군요.” 와인 초보라면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면 되겠지만 암흑 같던 와인계에서 실날같은 빛줄기를 보기 시작한 중초보들은 갸우뚱,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바닐라향과 계피향, 커피향, 태운맛? 포도에 진짜 이런 맛과 향들이 들어 있단 말인가?” 당연히 의구심이 솟는다. 물론 이런 맛을 내는 포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아는 체하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헛소리도 아니다. 그 비밀은 와인을 숙성시킬 때 사용되는 오크통(참나무통) 속에 간직돼 있다. 오크통의 원료가 되는 참나무 즉 오크에는 태닌, 당분, 바닐라 향을 비롯한 각종 고유 성분들이 간직돼 있다. 최소 150년 이상 된 참나무들을 베어내 통을 만드는데 넓적하고 길게 자른 나무들을 엮어 둥근 원형의 통으로 만들기 위해 불 또는 스팀을 가해 나무를 휘기도 한다. 완성된 통속 내부를 불로 그슬리는 과정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나무의 태닌이 부드러워지고 당분이 끓어 카라멜이 되기도 한다. 온갖 기술을 동원해 만든 오크통에 포도 으깬 물을 집어넣고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담가두면 불로 그을러 놓은 나무 탄내, 태닌 등 나무 성분들이 포도즙에 녹아든다. 와인의 숙성과정서 생긴다는 ‘부케’ 향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포도의 고유한 향(아로마)과 오크통이 혼합돼 만들어내는 향이다. 오크통의 그슬림 정도는 포도의 종류 또는 와인 스타일에 따라 ‘가벼움’(light toast), ‘중간’(medium), ‘많이’(heavy)로 나누게 된다. 물론 와인 생산자의 주문에 따른다.

▲오크통이냐 스테인레스 숙성이냐
오크통은 포도속의 태닌의 강성도 순화시키고 바디감을 늘려주며 와인의 불균형도 잡아준다. 따라서 고급 와인 제조에는 필수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와인의 대량생산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세워놓으면 어른 배꼽정도 크기인 오크통 한 개의 가격이 무려 800달러다. 고급 와인 생산지에서는 2년 정도 사용하고 나면 오크통의 성분이 다 빠져나갔다고 판단해 버리거나 급이 낮은 와이너리에 팔아버린다. 오크통의 수명은 보통 5년정도이니 와인 제조업체들의 부담은 당연히 높을 것이다.
그러니 와인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오크통 숙성만을 고집해 와인의 대중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가격의 틀을 깬 것이 미국, 칠레, 호주 등 신세계 와인 생산자들이다.
값비싼 오크통 대신 스테인레스 통에서 와인을 숙성시키는데 오크 향을 내기 위해 오크조각을 주머니에 쌓아 와인에 띄우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고급 와인 업체들은 오크통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전통만을 고집해온 프랑스도 대중화 물결에 밀려 고급 와인의 스테인레스 통 숙성 방안 연구만을 허용했다. 찬반양론이 치열하다.
▲오크통의 기원
오크통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고대 이집트와 로마시대에 와인 운반용으로 사용됐다가 2,000여년 전쯤 프랑스 등 유럽에 로마의 오크통 제조술이 전해진 것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수천년 전 와인을 담아두던 질항아리는 깨지기 쉬워 운반에 용의치 않았고 쇠 항아리는 무거운 데다가 값도 비싸 값싸고 운반이 용이한 가죽주머니를 많이 사용했지만 이것 역시 장거리 운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오크통은 와인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와인을 오크통 속에 넣어 오래 보관해 두다보면 와인의 맛과 향이 좋아지는 것을 알아차린 후 유럽인들은 위스키나 브랜디의 숙성 재료로도 도입해 사용했다.
갓 증류된 위스키 또는 브랜디는 무색투명한 액체다. 이를 오크통에 넣고 오랜 기간을 보관해 두면 오크통 속 성분이 우러나와 숙성과정을 거쳐 황금빛 액체로 변해간다. 원액의 향과 어우러진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크 산지
오크통은 프랑스산을 최고로 꼽는다. 프랑스는 기온이 서늘해 오크의 결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결이 단단하면 공기의 입출이 적당한 수준으로 통제된다.
가장 유명한 오크나무 산지로는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콜베르가 선박제조용으로 조성했던 숲인 리무쟁(Limousin)이 꼽힌다. 이외에도 드롱세, 알리에, 니베르네등이 우수 오크 생산지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오리건 산이 유명하며 프랑스산에 비해 숙성 와인의 향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미국의 오크통은 위스키나 브랜디에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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