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도 은혜를 갚는데
2007-05-26 (토)
뒤뜰에 있는 코랄트리 밑 반 평 남짓한 공지에 가지와 토마토가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 작년 봄에 집근처 화원에서 사다가 심었었는데 어쩐 일인지 처음부터 잘 크지를 않아서 토마토는 아예 꽃도 피지 않았고 가지도 몇 개 열리긴 했으나 다 자란 놈이 겨우 고추 크기만 해서 따려고 해도 선뜻 손이 내키지 않을 정도였다.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지난 겨울은 100여 년만의 추위로 여러 나무와 화초들이 동사했는데 문제의 가지와 토마토도 줄기 아래만 좀 살아있고 대부분 말라 비틀어져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뽑아버렸겠지만 그동안 비실비실 살아있었던 것이 가상하여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런데 봄철이 되자마자 놀랄 만한 소생력을 보이더니 잎이 돋고 실하게 자라 특히 토마토는 어느 해보다도 많은 열매가 달려있다.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토마토를 보면서 “뽑지 않고 살려주었더니 은혜를 갚는 모양“이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개나 소와 같은 짐승들이 주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갓 풀에 불과한 토마토가 보은하는 것을 실제로 겪고 있는 중이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은 풀과 관련된 고사에서 생겨난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의 위과가 부친이 죽자 젊은 서모를 개가시켜 지아비와 함께 죽어야 하는 순사를 모면케 하였더니 위과가 전쟁에 나가 싸울 때 그 서모의 아버지의 혼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묶어놓아 적들로 하여금 걸려 넘어뜨리 위과를 잡히지 않도록 해서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은혜를 입었을 때 이를 잊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갚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은혜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원수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배은망덕 때문에 세상이 더욱 혼탁하고 어지럽게 되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부모에게까지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르는 자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부모의 희생을 고맙게 생각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자녀들이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부모의 형편과 사정을 봐가며 눈치껏 처신했으나 이제는 전혀 부모의 입장을 고려치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고생하든 힘들어하든 상관없이 자식들은 해외여행을 떠나고 명품으로 가꾸고 고액과외를 받는 등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추구하려는 자기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민 후에도 계속 부모의 도움을 바라며, 생활능력이 없는 부모를 모시는 것은 고사하고 부양자체를 귀찮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데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크다. 입시지옥과 출세주의에 매달려 자식들 뜻을 너무 받아주고 기만 살려주다 보니 정작 성숙된 인간으로 키우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였지만 막상 참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이다. 일류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자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6월은 졸업시즌이다. 세상의 행복 가운데 가정의 화목과 자식의 성공에 비견할만한 즐거움은 없다. 자녀들이 잘 자라서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일은 큰 보람이자 기쁨이 틀림없겠으나 이를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은공을 잊지 않도록 훈육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자식이 얼마나 출세할 수 있겠으며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자식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5월은 그 가정에서 이미 사라진 것이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