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럽인의 눈으로 본 미국

2007-05-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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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버티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최루탄 연기가 교정을 뒤덮은 날이 많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녀서 그런지 아직도 그 시절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실존주의 철학도 그 당시 많이 접했던 사조인데 한동안 잊고 지냈다 들으니 고향친구라도 만난 기분이랄까?
‘아메리칸 버티고’라는 제목의 책을 쓴 저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줄여서 BHL로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고등사범학교에서 자크 데리다와 루이 알튀세르에게 철학을 배우고 24세의 나이에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스트라스부르대학교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으니 천재라고 불러줘야 맞을 것 같다. 그는 70년데 전체주의에 대한 증오와 자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소위 ‘신철학’이라는 사조를 창시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아마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분들이 제법 있으리라 믿는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BHL은 말 그대로 ‘행동하는 지성’인 모양이다. 1990년대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보스니아내전에 개입할 것을 국제사회에 가장 먼저 촉구한 지식인 중 한 명이며, 2003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대니얼 펄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는 미테랑 대통령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버티고(Vertigo)’는 히치코크 감독의 영화제목이기도 한데 현기증이라는 뜻이다. 미국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게 되는 유럽사람들 또는 프랑스 사람들은 현기증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책은 미국의 유명한 시사 월간지 ‘월간 애틀랜틱’이 170여 년 전, 미국의 교도소를 탐방하겠다는 목적으로 여행에 나섰다가 미국 사회 전역을 돌아보고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역작을 남긴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5년에 추진한 특별한 프로젝트다. 기간은 1년, 거리는 장장 1만5,000 마일을 커버한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예리하며 풍부한 지식과 카리스마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속도감있는 문체로 21세기 미국 사회의 모든 부분을 탐사하고 있다. 고속도로 순찰대원, 레스토랑 여종업원, 미국계 아랍인, 교도관, 인디언, 창녀 등의 평범한 사람부터 우디 앨런, 샤론 스톤, 조지 부시, 힐러리 클린턴 등 저명한 인사까지,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과 장소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한 미국의 충격적인 실체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www.aladdinus.com

이형열 / 알라딘유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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