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참사는 우리 모두를 경악과 슬픔과 걱정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범인이 한인이라는 데서 아픔과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침착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야 합니다.
먼저 범인이 한인이냐 미국인이냐가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승희 군은 한인이기 전에, 미국인이기 전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마 11:28)입니다. 21세기에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조 군이 한인이기에 한인으로서의 자성이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사과하고 참회하는 수준을 넘어 앞으로는 또 다른 조승희가 나오지 않도록 한인 전체가 근본적인 치유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한인뿐 만이 아닌 21세기를 사는 모든 민족이 힘써야 할 일입니다.
조승희는 진정한 소속이 없었습니다. 가정도, 학교도 몸만 일원이었지 끈끈한 관계를 갖지 못하고 사는 소속 없는 이 시대의 군상이었습니다. 한 집에 살지만 서로에게 속하지 못한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와 자녀가 하나 되지 못한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인주의가 극을 달리는 21세기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조승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가 한순간에 폭발시켰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핵 인간’인 우리가 시한폭탄처럼 터져버리면 나와 남을 죽이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핵은 절제 되었을 때에만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이 시대 사람의 특징은 ‘분노’입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를 향하여,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약한 자들은 힘없는 자들에게 분노를 안고 살아갑니다. 참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해결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겠지만 저는 거기에 영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가정의 회복이고, 모든 조직에서의 인간관계 회복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가정에서부터 선교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단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와 더 나아가 절대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선교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분노에 모든 사람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는 21세기의 조승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여야 합니다. 참사로 피지 못한 대학생들이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안식하기를 추도하며 모든 유가족위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