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세계-유럽’ ‘신세계-미국·호주·칠레’

2007-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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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와인 관련 잡지들을 읽다 보면 와인에 ‘올드 월드’(Old World), ‘뉴 월드’(New World)란 접두사가 붙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글자 그대로 ‘구세계와 신세계’라는 말인데 초짜들로서는 알듯 말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올드 월드’는 와인의 원산지인 유럽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을 말하고 ‘뉴 월드’는 와인의 역사가 짧은 미국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등 미 대륙과 호주, 사우스아프리카 등지의 와인을 일컫는다. 와인 제조용 포도는 원래 유럽이 원산지다. 미국이나 호주, 남미 등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와인을 만들기에 부적합 품종들이 많다(냄새가 나거나 당분이 충분치 않다). 그리스에서 기원 5,000년 전 와인을 만들었던 흔적이 발견됐으니 와인의 역사는 가히 1만년이 넘는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유럽 곳곳은 포도밭으로 뒤덮일 수밖에 없고 제조기술도 노하우가 축적돼 예술의 경지를 넘나들 것이다. 생산량도 엄청나다. 전 세계 와인의 60%가 유럽산이다(최고 와인 생산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순이고 미국은 네번째).


<유럽산 와인들은 재배 환경을 중시하는데 반해 미국등 신세계 와인들은 포도 품종의 맛 표현에 중점을 둔다>

구세계-전통적 제조방법 따르고 섬세하지만 과일맛 적어
신세계-새 제조법 도입 포도 품종 중시 과일 맛·향 강해


이렇게 시작된 와인은 유럽의 정복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미 대륙만 해도 300년 전 스페인 정복자들을 따라온 가톨릭 포교사들이 유럽종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이 시초가 되어 신대륙 와인 생산의 닻을 올리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올드 월드’와 ‘뉴 월드’라는 단어로 세계 와인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놓았다. 그렇다고 ‘올드’와 ‘뉴’가 역사만을 가지고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두 지역이 추구하는 와인 생산 방식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은 전통을 중시하지만 신세계 와인들은 자유분방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성격이 강하다. 역사와 문화가 깊은 유럽에서는 와인도 예술작품 만들듯이 애지중지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와인들은 복잡하고 난해하며 해가 갈수록 감미가 더해져 오래두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미국 등 신세계 와인은 총질하던 서부시대를 연상하듯 대중적 호소가 강하고 심플해 깊이를 느끼면서 마실 수 있다. 특히 포도의 재배 환경보다는 포도의 성질 표현에 집중해 과일 맛과 향이 깊다.
유럽의 와인 제조업자들은 자자손손 이어오는 와인 제조방식을 이어 받아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듯 아기자기한 와인을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5대 샤토니 부르고뉴의 로마네 꽁티니 뭐니 하는 것도 모두 수백년 전통을 이어받아 제조하는 예술품 같은 와인들이다. 5대 샤토에 꼴찌로 조인한 보르도 와인 샤토 무통 로실드의 레이블은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채운다. 화가들 역시 영광으로 알고 그림을 그려준다. 와인을 예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와인 생산을 마치 예술 작품 만들듯 한다. 오랜 전통의 양조장 특유의 기술을 가미해 섬세하다>

유럽 와인들은 포도 재배지의 토양과 주변 환경, 즉‘테루아’(terroir)를 아주 중시한다. 와인의 맛도 이 테루아에 의해 좌우된다.
이렇다보니 참견도 많다. 어떤 산언덕에는 무슨 품종의 포도를 재배해야 하고, 어떤 품종은 또 어떻게 생산하며 얼마나 달아야 하는지 또는 드라이해야 하는지 등등 와인 제조방식이 대대로 이어오는 전통에 근거해 제재가 심하다. 이에 반해 ‘뉴 월드’는 전통의 벽을 훌쩍 뛰어 넘어 독자적인 와인 생산에 전념한다. 어느 곳에 어떤 포도를 심고 어떤 와인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몽땅 와인 제조업자들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또 테루아보다는 포도 자체 성질표현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러니 과일 맛과 향이 더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또 예술성보다는 대중성에 중점을 두고 창의적 생산을 통해 과학적 제조방법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한통에 800달러씩 나가는 비싼 오크통을 쓰다 보면 와인 생산량에 제약을 받는데다가 가격까지 높아지게 되므로 대량 생산을 위한 스테인레스통을 숙성 방식에 도입한다. 와인의 맛이 오크통의 특성에 따라 섬세하게 좌우되는 대신 대형 스테인레스통에서 똑같은 맛의 와인을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뉴 월드 방식을 도입하는 와이너리도 생겨나지만 대부분 전통을 고집하다.
‘올드’와 ‘뉴’의 차이가 또 있다. 레이블이다. 올드 특히 프랑스 와인은 재배 지역을 중시하므로 지역이나 와인 제조업체 이름을 먼저 쓴다. 특히 포도 품종은 언급조차 하지 않아 초보들에게는 프랑스 와인 레이블이 무슨 암호 같은 기분이 들어 거리감부터 생겨난다. 와인 생산지의 특성을 모르면 품종을 알아맞히기가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 와인은 심플하다. ‘갤로 양조장-카버네 쇼비뇽-2003년 빈티지-소노마카운티’ 정도가 전부이므로 ‘어디서 재배한 무슨 품종의 포도가 몇 년에 생산된 것을 이용해 어느 와이너리가 만들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어 초보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 올드 월드와 뉴 월드의 차이점

<올드 월드>
전통
와인의 이름은 제조지가 중시됨
포도 재배지의 자연 환경을 와인에서 느끼는 것이 목표
전통적 제조 방식을 지킴
와인은 섬세하지만 과일 맛이 덜하다
포도 재배지는 상대적으로 작으며 고정됨
와인 제조는 예술이다
포도맛은 포도 재배지에 좌우된다

<뉴 월드>
창의적
포도 품종이 중요시됨
포도 자체의 맛 표현을 중시함
새 기술 도입
와인이 과일 맛과 향이 강하다
포도 재배지가 넓고 유동적임
와인 제조는 과학이다
와인 제조업자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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