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L.A 타임즈지에 광고란에 이런 광고가 났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주시는 분에게는 일불을 드리겠습니다.’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고독한 노인이 낸 광고입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시는 분에게 일불을 드리겠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영국 소설에 ‘리버풀’ 항구에 어떤 노인이 배를 탈려고 하다가 막
부두가로 튀쳐 나옵니다. 그러더니 부두가에서 놀던 한 소년에게 동전을 쥐어 주면서 ‘예야, 배가 떠나갈 때 나를 위해서 손을 좀 흔들어 줄 수 있겠니?’
이런 모든 사연들이 고독하다는 손짓들입니다.
역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고독하다고 느껴질 때 침묵이 필요합니다. 고독은 군중속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란하고 화려한 환경도 아닙니다. 시끄러운 장소도 아닙니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되는데 그 분은 시끄럽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이 고요함 속에서 자라나고, 해와 달과 별들이 고요 속에서 어떻게 운행하는지를 보면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십니다.
침묵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고요의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 일상생활과 대인 관계 그리고 시끄러운 외부 세계의 요구로부터 떠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끊임없는 음악, 잡담으로 인한 소음, 그리고 분주한 일정으로 꽉 차 있습니다. 많은 가정의 방에, 모든 차에, 모든 사무실에 그리고 엘리베이터에도 음향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그가 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늙은 사가랴의 경우, 그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곧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의 그러한 생각을 제어토록 침묵하게 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가랴가 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의 혀는 몇 달 동안 굳어 버렸고, 그 동안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앞으로 있게 될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조용히 숨어 있었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불가사이하고도 신비한 일에 관해 묵상할 필요를 느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눅1:18-25, 63-64).
아프리카 남아연방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간의 옥살이를 마친 후 대통령직을 맡아 세계가 놀랄만큼 휼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27년 간의 침묵에서 배운 교훈’이라 말하였습니다. 침묵에서 얻는 힘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침묵과 고독을 나태와 무위(無爲)함, 비생산적인 것 등과 동일시 했던 적이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면 내 마음은 걸어야 할 전화, 읽어야 할 책, 써야 할 원고, 준비해야 할 설교,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들에 대한 생각 따위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용할 때도 정신 집중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나는 15분-20분 동안은 내 마음이 고독에 저항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고는 침묵의 시간을 갖기 위해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영적인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고, 오히려 그러한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려는 갈망이 커졌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성격상 활동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고독과 침묵은 힘든 작업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필요한 수고인 것입니다.
마음의 정원의 질서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성격에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 침묵을 심고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수난주간입니다. 십자가의 고독을 침묵하면서 묵상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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