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가 ‘은근한 술의 유혹’에 빠졌다

2007-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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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페스티벌’시음회 가보니…

‘고쿠센’(고교생)이란 12편짜리 TV 코믹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를 쳤다. 일본식 유머를 가미해 만든 이 드라마는 야쿠자 가문을 이어갈 주먹짱 얼굴짱의 초짜 여선생이 두목 후계 자리를 마다하고 고3 문제아반의 담임을 맡으면서 문제 학생들을 힘으로 사랑으로 계도해 새로운 가치관을 일깨워준다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를 끌어내는 이유는 여선생의 아버지인 야쿠자 두목이 사케를 음료수처럼 애용하는 것 때문이다. 대화를 나눌때나 혼자 고독을 즐길때면 1.8ℓ 짜리 됫병들이 일본 청주를 도기 잔에 따라 마신다. 삼국시대 백제에서 건너간 한국의 청주가 변신을 거듭하며 일상의 음료가 되어 버렸다. 일본 국내뿐 아니다. 불과 40년만에 일본이 사케를 세계 주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일본은 전후 청주(사케)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쌀의 도정 비율을 최대한 높여(쌀을 무려 40%만 남겨두고 깍는다) ‘프리미엄’ 사케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우리만 하더라도 일식집에서 고급 사케 ‘구보다 만수’나 ‘오니 고로시’등을 주문해 스시, 사시미와 함께 마시고 있지 않는가. 일본의 사케는 프랑스의 포도주, 영국의 위스키, 독일의 맥주, 중국의 마오타이와 같이 이미 세계에 일본을 대표하는 명주 반열에 올랐다. 경제력을 앞세워 술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으니 술속에 국력이 있다고나 할까.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열린 사케페스티발에는 1,000여명의 사케팬들이 모여 일본 청주의 맛에 흠뻑 젖었다. <진천규 기자>>


일반인 등 1천여명 몰려 180여종 ‘홀짝’
쌀로 빚은 부드러운 맛 애주가 사로잡아

LA주재 일본 총영사관이 지난 22일 베벌리힐스 ‘르 메리디엔’ 호텔에서 ‘사케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일반인들을 위한 시음회에 줄잡자 1,000여명이 넘는 애주가들이 몰려들어 사케의 맛에 흠뻑 젖었다.
이날 출품된 사케만도 180 종류. 고급(프리미엄)부터 일본인들이 흔히 마시는 보통(푸츠·테이블 사케)까지 미국에 수입되는 일본 사케가 모두 등장했다. 특히 시음장 곳곳에 스시와 스테이크, 데리야키바가 마련돼 허기진 애주가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플래스틱 재질의 소주잔 하나를 받아들고 빨간색 손목 띠를 차고 어깨를 부딪쳐가며 거북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마신 사케만도 85종. 배가 고파 스시바 줄서기에 소비한 30분을 아꼈더라면 줄잡아 120종의 사케를 시음했을 것이다.
수많은 인파와 장시간 기다리는 고통만 뺀다면 미국서 호사를 누리는 사케가 부럽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요즘 전통주 찾기 운동이 활발해져 시중에는 막걸리, 약주부터 과실주, 소주까지 우리 것을 보여 줄만한 술들이 상당수에 달하지만 어느 것 하나 미국시장에 제대로 소개되는 것이 없지 않는가.
소주만해도 옛날 진로, 경월, 무학 수준에서 요즘은 도수를 낮춰가며 다양한 종류로 출시하고 있고 웨스트 LA등 이미 미국의 선술집에서 얼음 섞은 소주에 레몬이나 라임 한조각 띄워 칵테일로 만들어 판지도 이미 오래됐다.
우리의 술들도 일본처럼 한국정부의 체계 확립 노력과 육성, 그리고 해외 홍보의 삼박자에 맞춰 해외로 진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사케는 차게해사 마시는 것이 좋다. 더운 사케는 마실때는 몰라도 집에갈 때 취기가 쉽게 오른다>

▲사케의 매력
사케는 쌀로만 빚은 술인데 서양인들은 어떤 맛에 매력을 느낄까.
톡쏘는 소주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한인들로서야 사케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양주나 밋밋한 맥주 맛을 즐기는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요즘의 사케는 맑고 부드러운 전통식에다가 향과 담백한 맛을 살려낸 ‘프리미엄’급으로 주조돼 세계 애주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케의 맛은 물과 쌀의 도정 비율에 주로 좌우된다. 일본내에서 판매되는 90% 이상의 사케는 쌀을 깍는 도정 비율을 7분도(쌀을 깎아 원래 모양의 70% 이상 남긴다) 이상으로 맞춘 다음 물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테이블 사케들이다. 이 제품은 쌀냄새, 정확히 말한다면 퀴퀴한 쌀눈 냄새가 나 마시기도 전에 알코올 냄새와 더불어 코를 자극히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돌리게 한다.
쌀 몸통은 탄수화물이지만 쌀의 핵심인 눈은 각종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아미노산, 즉 단백질로 되어 있다. 70%이상으로 도정을 하면 쌀속에 쌀눈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므로 주조 과정에서 단백질이 발효된듯한 퀴퀴한 냄새가 사케에 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냄새를 없애주고 향기를 더해주기 위해 쌀을 절반이상, 또는 최소 40%(쌀의 60%를 깎아 원래 모양의 40%만 남긴다)까지 깎아내 쌀눈은 아예 없애버린다. 당연히 가격은 올라가게 되므로 일반인들의 소비가 쉽지 않다. 여기에 옥수수등으로 만든 순도 높은 알코올을 가미하면 퀴퀴한 냄새가 사라지고 향기가 풍겨나오는 고급 사케가 탄생한다.
이날 출품된 사케의 4분의1 이상이 순쌀로 만들되(준마이) 도정 비율을 50% 이하로 깎아 순도높은 알코올을 가미한 다이긴조 준마이급들이다.
이들은 쌀을 많이 깎아 맛이 가볍고(라이트 바디)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테이블 사케(도정비 70% 이상) 바로 아래급 혼조(도정비 70% 이하)나 순쌀의 준마이 사케는 무겁고(풀바디) 향기도 많지 않다.

▲단맛과 드라이한 맛
한인들은 드라이한 사케를 좋아한다. 긴조급(60% 이상 도정비)이나 이보다 쌀을 더 많이 갈아 만드는 다이긴조등 고급 사케의 대부분이 단맛이 떨어지고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다. 한인들은 단맛 많고 풀바디한 준마이 사케보다는 도정비 높고 라이트 바디한 긴조급 이상의 사케를 좋아한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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