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영복과 떠나는이야기가 있는 음식여행/ 신선로 이야기

2007-03-1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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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과 떠나는이야기가 있는 음식여행/ 신선로 이야기

전통 교자상의 중심 요리인 신선로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전통적인 교자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요리가 있다.
그게 신선로, 구절판, 탕평채, 갈비찜 전복초인데, 이 5가지만 제대로 차려내도 상(床)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5가지 요리 중 신선로야 말로 교자상의 품격을 높여 주는 상징성이 있는 전통음식이다.신선로를 궁중에서는 열구지(悅口旨)탕 또는 열구자탕(熱口子湯)이라고 하는데, 1827년 [진작의궤(進爵儀軌)]에 열구자탕(悅口資湯)이라 하였고, 이 열구자탕(悅口資湯)을 [수문사설(搜聞事說)]
에는 열구자탕(熱口子湯), [송남잡식(松南雜識 )]에는 열구자(悅口旨), 조선시대 순조 9년(1809년)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지은 사대부가 여인들의 필독서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 [해동죽지(海東竹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에는 신선로라 하였고,1868년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신설로(新設爐)라고 하였다.

쇠고기와 숭어, 민어, 전복, 해삼 등 어육(魚肉)과 무, 미나리, 은행, 버섯 등을 넣어 끓이는 신선로(神仙爐)는 한국요리의 대표라고 할만하다.
입을 즐겁게 한다는 뜻에서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부르는데, 일설에는 신선로라는 이름을 영조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당파 싸움에 골치를 앓던 영조가 각 당의 영수들을 불러 신선로를 대접하는데 영조 자신이 술 한 잔에 매번 다른 재료를 드니 신하들도 다른 재료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서로 뒤섞이게 해 당파를 화합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조가 신선로를 당쟁 완화의 도구로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선로라는 이름의 유래는 따로 있다. 홍선표(洪善杓)의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보면연산군 때 사관(史官)이었던 정희량(鄭希良)은 무오사화 때 김해로 귀양 갔다가 석방된 후 “앞으로 더 큰 사화가 있을 것이다”라면서 잠적했다. ‘연산군일기’ 8년 5월 14일조는 “단오(端午)날 몸을 빼서 도망해 버려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라고 적고 있다. 실록의 사관(史官)은 “그 가족이 찾아서 해변에 이르니, 다만 신 두 짝이 물가에 남아 있을 뿐 이었다”면서 “그가 복서(卜書) 보기를 좋아하여 반드시 길(吉)한가 흉(凶)한가를 먼저 점쳤었다”고 부기했다.

정희량이 갑자사화를 예상하고 미리 피신했다는 이야기다.
매양 일이 있게 되면 산 속으로 피신한 정희량이 야채·버섯처럼 산에서 나는 각종 재료를 쟁개비(냄비)에 끓여 먹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 요리를 신선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신선로에 관한 [이회당집성(二晦堂輯成)의 내용을 인용하여 “虛庵 정희량(鄭 希良)선생이 일찍이 수화기재(水火旣濟: 易에서 쓰는 말로 水火偏勝하지 않고 陰陽話調하다는 뜻)의 이(理)로써 이 노(爐)를 창작하고 채소를 넣어 익혀 자셔 조석반시(朝夕飯時)에 다만 일로(一爐)뿐이었는데, 그 후 선생이 선거(仙去)하매 세인(世人)이 신선로라 일렀다 한다” 고 기록 하였다.

또 세조가 즉위하자 세상을 버리고 은거했던 생육신(生六臣) 김시습(金時習)도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가 원조라는 이야기도 있다.
세상을 버린 은자(隱者)의 음식 신선로가 궁중 요리가 된 것은 은자가 무병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신선로도 전골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전골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품위 있는 요리로 발전하여 교자상의 중심 요리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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