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교회(장철우목사)는 지난 4일 오후4시 제8대 담임목사로 봉직한 고 임순만목사 1주기 추모예배를 가졌다.
추모예배는 차원태목사의 모임을 여는 인사, 현악4중주의 추모연주, 예배의 부름, 찬송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함성국목사의 기도, 차원태목사의 추모의 말씀 ‘아아, 님은 갔지마는’, 이영인선생의 특송, 지명관교수의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서’, 이승만목사의 ‘임순만목사를 추모하며’, 안맹호목사의 ‘미국 원주민 이야기’, 영상에 담은 고 임순만선생의 발자취, 감사의 인사, 찬송 ‘어느 민족 누구게나’, 장철우목사의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차원태목사는 추모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님 임순만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다. 친구요 선생님이요 목사님이요 교수님이신 그는 우리의 매우 친애하는 ‘님’(Dearest One)이다. 우리가 부르는 그 님은 지금 침묵하고 있다. 물론 그 침묵은 그의 웅변인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임순만의 님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그의 님을 찾아 나선다면 우리는 그의 철학과 신학을 여러 편 써야할 것이다. 그의 님들 중에 제일 앞에 서야할 분은 님 장혜원 일 것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Mozart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일이 있다.
장박사님은 ‘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하실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그의 주변에 있었던 친구들은 넉넉히 눈치 챘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하고 얼마나 수없이 항변했을까 우리는 짐작한다. 고독의 정체와 침묵의 무게를 헤아리며 많은 낮과 밤에게 묻는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만해) 상실의 애통과 말 없음의 허망, 그 실상은 말과 글의 영역을 훨씬 넘어 선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냉혹한 현실을 살았다. 님을 잃고 나는 그날 하나님께 읍소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사 고락을 함께 한 당신의 아들, 이제 당신에게로 돌아갑니다. 그의 말없는 작별인사를 저희들 믿습니다. 그는 출발하고 우리는 뒤에 남습니다. 그가 버리고 떠난 낡은 배는 그 돛을 아직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항해를 계속할 것이나 풍랑은 그치지 않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우리 생존자들에게는 세상 떠난 이들을 향한 쉽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임무’가 매워져 있다”며 “생존자들은 죽은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 죽은 이들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떠난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할 권리가 있다. 이 사자(死者)들의 권리를 소홀히 여기거나 망각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희박하다”고 추모했다.
1926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나 지난해 3월4일 80세로 별세한 고 임순만목사는 1954년 도미했으며 연세대신과대, 유니온신학대, 드루대(Ph.D.)를 졸업했다. 64년 미연합감리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64년부터 68년까지 뉴욕한인교회(제8대)를 담임한 후 71년부터 97년까지 뉴저지주립대 윌리암 패터슨대학교에서 사회학교수로 봉직했다. 미망인 장혜원박사는 이화대학 을 나온 뒤 53년 도미해 웰슬리대학, 콜럼비아대학(Ph.D.)을 졸업 후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신경화학분야 연구원 겸 교수로 재직하다 90년 조기은퇴하고 91년까지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김명욱 기자> myongkim@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