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바람 분다~ 진판델 만나러 가자

2007-0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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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90곳 참가 ‘진판델 페스티벌’ 내달 16~18일 파소 로블스서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추슬러 볼까. 온 집안을 뒤져 대청소 하며 쌓인 먼지 풀풀 털어내 보자. 빗물에 얼룩진 유리창을 반들반들 닦아두면 마음이 다 후련하겠지. 비바람을 휘날리며 심술궂게 몰아치던 ‘동장군’의 기세도 훈훈한 바람에 스스르 기가 꺾여 멀리 물러나게 마련인데. 흙 사이를 비집고 삐죽 고개를 내밀며 소록소록 피어나는 파란 새싹들을 볼 때면 벌써 봄인가 싶다. 봄인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 살포시 불어오는 봄바람에 여인의 마음이 슬그머니 열린다는데 아내를 데리고 위로여행이라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와인 컨트리 파소 로블스(Paseo Robles)에서 봄바람을 맞아 보자.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파소 로블스‘진판델 페스티벌’(Zinfandel Festival)이 3월의 셋째 주말인 16~18일 열린다. 170여개 와이너리 중 90개 이상의 양조장이 미국 와인의 대명사 ‘진판델’을 포함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와인을 자랑하는 행사다. 산과 들이 포도나무로 꽉 차 있는, 볼 것 없는 포도마을이지만 이날만큼은 자동차 쇼, 경매, 시음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줄지어 열리며 봄바람 타고 날아온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파소 로블스는 스패니시로 ‘떡갈나무 지나는 길’이란 뜻이다. 양팔을 점잖게 늘어뜨린 떡갈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와인의 왕도는 먹는 것 이외에는 없다. 와인 전문가가 되려면 정규 교육도 받아야겠고 독서량도 늘려 탄탄한 이론을 쌓은 다음 와인의 맛을 보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작해 만드는 오묘한 진리를 세치 혀로 늘어놓아야 하겠지만 애호가 정도라면 이론보다는 맛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마셔야 하는데 와인 클럽이나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는 한 한순간에 많은 와인을 골고루 마셔볼 수는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동네 단골 와인바를 뚫어 놓으면 모를까. 올봄 꼭 한번 관광 삼아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거리는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다. LA에서 101번 프리웨이 타고 북쪽으로 200마일 거리니까 차를 타고 넉넉잡고 4시간은 가야 한다. LA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는 없을 테고 1박2일 일정이 적당한데 오고가며 구경거리도 많아 봄나들이에는 아주 적당하다.




▲진판델(Zinfandel)
진판델 축제니까 진판델이 어떤 와인인지는 알고 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와인 모임에서 지난주 진판델 시음을 하다 알게 된 일이다. ‘진판델’이 화이트 와인으로만 알고 있는 ‘초짜’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한 와인 초짜의 말. “미국 처음 와서 마셔본 진판델은 핑크빛 나는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이건 레드네요…” 일순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꼭 잘못된 말은 아니다. 그 ‘초짜’가 마신 것은 핑크빛 ‘화이트 진판델’(White Zinfandel)이다. 30여년 전 나파밸리의 서터홈(Sutter Home) 와이너리 주인 밥 트리체로가 레드 진판델을 압착하면서 처음 뺀 주스를 다른 통에 넣어 두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저가의 ‘찰스 셔’ 와인이 출시되기 전인 90년대 중반까지 미국 내 판매 1위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당도가 높아 단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인기다.


<2005년 ‘쿠조 진판델’>

▲미국의 대표와인 진판델
진판델은 당연히 레드 와인이고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만 생산된다. 요즘은 사우스아프리카에서도 극소수 재배되기는 하지만 수준에는 미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진판델 포도의 원산지는 아니다.
진판델은 1800년대 중반 금을 찾기 위해 백인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릴 무렵(골드러시) 와인을 물처럼 마시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져와 심은 것이 시초가 된다. 당시 그들은 친근하면서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 필요했는데 우아한 리슬링이나 꽃향기 풍부한 비오니아(vionier) 품종은 그들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진판델은 미국에 불어 닥친 금주령으로 시들해졌다가 1960년대부터 다시 고개를 들어 70년대 중반 항아리형(jug) 병속에 담겨져 팔렸던 와인들의 주요 품종으로 옛 영예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당시 판매되던 ‘저그 와인’들이 프랑스 부르고뉴의 영어식 단어인 ‘버건디’(burgundy)로 이름을 썼으니 이 속에 진판델이 들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판델의 맛은 독특하다. 우선 톡 쏘는(스파이시) 향기가 두드러진다. 알콜도수는 상당히 높아 어떤 것은 17%까지 가는 것도 있다. 품성이 솔직해 알콜도수가 높을수록 입안에 넣으면 풍만한 느낌의 풀바디 와인으로 가는데 14% 미만이면 미디엄 라이트 바디쪽으로 기울어 각종 딸기 향들이 좋다.

▲파소 로블스 2005년 도버캐년 쿠조 진판델
파소 로블스 와이너리 협회서 시음용으로 보낸 ‘도버 캐년 와이너리’(Dover Canyon Winery) ‘쿠조 진판델’(Cujo zinfandel)을 맛보았다.
뜨거운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난 포도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남아 강하고 단 잼을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알콜도수는 15.7%로 세며 체리와 베리향이 좋고 후추 맛의 피니시가 길게 남는다. 특히 18개월 오크통 숙성 제품이어 오크에서 나는 각종 향이 좋다.
가격은 19달러. 일반 마켓에서 구하기는 어렵고 전문 와인 샵에서도 취급하는 곳이 한정돼 있다.
www.posowine.com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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