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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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사우스그로브 초등학교 3학년 김정본 양

2007-02-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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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때는 1990년대 말.

남들은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못가서 안달이던 사회적 분위기를 거슬러(?) 만삭의 몸으로 한 여인이 뉴욕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에서 출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남편의 강력한 주장에 못 이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내는 한국으로 향했고 그렇게 김정본(8·사진·사우스그로브 초등학교 3학년)양은 한국의 하늘 아래에서 세상과 처음 만났다.

조금은 별난 아빠 덕분에 원정출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부 한국인들이 들으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출생의 비밀(?)을 갖게 됐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에 온 한인들이 미국 이름을 갖는 것은 스스로 민족의식을 흐리는 것이고 이민자의 자존심을 스스로 포기하는 ‘창씨개명’이라고 여기는 아빠 때문에 한인 이민 2세지만 미국 이름도 갖지 못했다. 아니 갖지 않았다.


한국 이름의 끝 글자 덕에 타민족 친구들은 편의상 ‘바니(Bonnie)’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8세 꼬마 아가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의 이름은 ‘바니’가 아니라 ‘정본(Jung Bon)’이라고 또렷이 일러준다.햄버거, 피자, 스파게티보다 국물이 있는 한국식 냉면과 국수 등 면 요리와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토종 한국인 입맛을 지녔다. 단, ‘된장’이 들어간 음식의 깊은 맛까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자신은 그냥 ‘한국인’이 아니고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어랑 영어를 다 잘 할 줄 알잖아요”라는 아이다운 대답이 되돌아왔다.
학교 핼로윈 데이나 다민족 문화축제의 날을 비롯,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늘 한복을 입고 등교해 교사와 학생은 물론, 지역신문에서까지 취재할 만큼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로 이민 온 한인학생이라도 오는 날이면 통역까지 도맡고 있다.

하루 평균 3권의 책을 읽는 독서습관은 도서관학을 전공한 엄마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학원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 자녀교육에 대한 아빠 나름대로의 주관 덕분에 학원 대신 도서관을 문지방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인 습관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장래 미술가 겸 미술선생님이 되고 싶다더니 이내 아빠처럼 책을 쓰면서 엄마처럼 한국학교 선생님도 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다.

최근 1년 동안은 한국 고전무용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다. 지난달 사요셋 도서관 증축 기념 개관식 행사 무대에 올라 부채춤을 선보인데 이어 오는 16일에는 스타이브센트 고교 한인학생과 한인학부모회가 주최하는 ‘놀이마당’ 한국의 밤 문화행사 무대에도 오른다. 1982년
스타이브센트 고교를 졸업한 아빠 덕분에 동문자녀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다. 아빠가 다녔던 학교 무대에 선다니 긴장도 되지만 무대에 오를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할아버지부터 아빠와 엄마, 오빠와 자신까지 3대가 모두 한국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는 김양은 김명훈·백영숙씨 부부의 1남1녀 중 둘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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