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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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은 없다

2007-0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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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 음식점에서 비빔밥을 시켰을 때 였다. 함께 갔던 사람이, “엄밀히 말해 비빔밥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세요?”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우리가 비벼 먹기 위해 시키는 음식은 정확히 말하자면 ‘비빌 밥’ 이고, 그것이 날라져 오면 고추장, 참기름 넣어 싹싹 비벼서 먹는데 그땐 ‘비빈 밥’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싶어 함께 허허 웃으며 한국인들의 말장난 솜씨에 다시 한번 탄복 했었는데, 2007년 황금 복돼지 새해를 맞아 과연 무엇이 우리 삶을 살찌워줄 것인지 생각을 하다 그때의 ‘비빌 밥’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뉴욕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한 한인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편집국장으로부터 신년 특집의 표지에 들어갈 그럴듯한 신년 메시지를 써보라는 주문을 받고 난 무척 난감했었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마음에 없는 헛소리를 쓸 수도 없으니 제발 딴사람을 시키라고 해도 그분은 꿈쩍을 안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월 1일에 솟는 해가 다른 날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자그만 보람이라도 찾는 한해를 맞자”는 식으로 김빠지게 적당히 써서 올리자 그것은 즉시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약간 흥분 잘하는 사람에게로 그 일이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웬 부산이냐는 것이 당돌하던 20대 때의 태도였다면, 좀 더 세월이 흐른 오늘에는 그래도 새해에는 뭔가 좀 달라지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한국 신문, 미국 신문 어느 쪽을 봐도 안팎으로 싸우고 죽고 갈등하는 기사 밖에 눈에 뜨이지 않는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지난 연말에 가장 의외다 싶은 신문 기사는 사형 당하기 직전 사담 후세인이 발표한 고별편지의 내용이었다.
그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증오를 거부하라”고 했는데 이유는 증오는 정의와 공정함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를 공격한 나라들을 미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1982년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음모에 대한 보복으로 148명을 사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그가, 진작에 그 말처럼 행동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올해의 희망사항 리스트에는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 현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두 가지 좀 엉뚱한 항목이 올라있다.
하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해리가 죽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체의 지방 조직을 근육으로 전환 시켜주는 맥주를 과학자들이 발명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2007년 1월 1일이, 2006년 12월 32일이 된다고 해서 뭐가 다르냐 싶더라도 그래도 새해에는 늘상 먹는 비빔밥이 ‘비빌밥’이나 ‘비빈밥’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듯, 사소한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고, 항상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신선한 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러한 것이 쌓여 증오에 찬 폭정꾼이 어느날 갑자기 평화를 노래하며 실천해 가는 변화도 일으킬 수 있고, 어느 누군가가 불룩한 뱃살을 멋진 근육으로 전환시켜 주는 맥주를 발명하게도 만들어 줄 것이다.
yk@campwww.com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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