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다

2007-0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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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먹세 그려/또 한잔 먹세 그려/꽃 꺾어 산(算) 놓고/무진 먹세 그려…’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의 초장 구절이다. 먹고 또 먹고 꽃잎으로 잔 수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자는 권주가이다. 건강은 생각지도 않고서… 건강을 염려하는 애주가들을 위해 꼭 권하고 싶은 술이 바로 와인이다. 심장병 예방, 위장병 예방, 항암 효과 등등 건강을 위한 온갖 형용사들이 따라붙는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니…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태닌’(tannin)이다.


<한 포도농장주가 와인 제조용 포도 품종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심장병 예방·항암 등 건강에 좋아
쓰고 떫지만 숙성되면 부드러워져
스튜·구운 고기요리와 ‘찰떡 궁합’
시라·카버네 소비뇽 품종에 많아


와인은 태닌, 산, 알콜, 당 등의 성분들이 잘 조화(balance)되어야 좋은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사람으로 친다면 이목구비와 몸매, 다리 등이 균형을 이뤄야 몸짱 소리를 듣듯이 와인이 몸짱이 되려면 성분 조화가 좋아야 한다. 이중에서도 으뜸이 쓰고 떫은맛을 내는 태닌(tannin)이다.
초보자들이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쉽게 느끼는 것이 이 태닌 성분의 떫은맛이다. 태닌이 강한 와인은 입안을 드라이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초보자들과 와인과의 인연을 방해하는 역할도 한다.
“와인이요? 먹어 봤는데 떨떠름해서 원…” 요즘 인기 짱인 와인을 마셔보고 싶어도 떫은맛에 질려 고개를 돌린다는 애주가들이 많다. 그러나 이 떫은 성분이 바로 건강 지킴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들이 달라질 터인데.
태닌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를 오랫동안 물에 우려내면 나타나는 쓰고 떫은맛이고 아직 덜 익은 감을 먹을 때 쉽게 느낄 수 있다.
태닌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통 와인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염탐하기가 불가능해진다.
태닌은 와인의 뼈대와 골격을 갖춰주는 성분이다. 또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하고 숙성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방부제 역할도 해 냈다. 오래된 와인을 마실 때 종종 바닥에 고형 침전물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닌 성분이다.
장기 숙성한 와인을 마실 때는 꼭 20~30분간 세워뒀다가 마시는 것이 좋다. 태닌 침전물들을 가라앉혀야 하기 때문이다. 레드와인 특히 카버네 쇼비뇽 등 장기 숙성형 와인병을 보면 밑 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다. 침전물이 한 곳에 모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와인을 따를 때는 침전물이 쉽게 섞여 나오지 않는다. 침전물이 섞이면 와인의 쓴맛이 강해진다.
금방 출시된 태닌 성분이 강한 와인을 마실 때는 별도의 그릇에 따라 2~3시간 놓아두는 티켄팅을 하는 것이 좋다. 공기와 접촉하면 맛이 순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그러나 이처럼 떫고 단단하게 고집을 피우는 태닌도 세월이 지나 장기 숙성되면 와인의 당, 산, 알콜 등의 기타 성분과 작용해 부드러워진다. 탄탄한 풀바디를 유지하던 고급 와인들이 병속에서 오랜 기간 잠을 자면 미디엄 바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와인의 성품을 결정하는데 태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도의 태닌
태닌은 씨, 껍질 그리고 줄기에 많이 들어 있다. 와인을 만들 때 껍질까지 갈아서 만드는 레드 와인에 많다. 맛은 크게 쓴맛과 아스트레젠시로 구분되는데 쓴맛은 혀의 뒤 끝에서 느껴지고 아스트레젠시는 혀의 앞부분에서 맛볼 수 있다.
태닌 성분이 많은 포도로는 카버네 쇼비뇽이나 시라 등을 꼽을 수 있다. 카버네 쇼비뇽은 늦게 심고 늦게 수확하는 품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껍질이 두꺼워 수확을 늦추어도 품종의 변화가 심하지 않다. 이 두꺼운 껍질 속에 태닌 성분이 투박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와인 속 태닌은 와인을 보관하는 오크통 속에서도 나온다. 프랑스 와인들은 되도록 작은 오크통속에서 숙성시킨다. 이는 오크의 태닌과 향기, 심지어는 안쪽으로 불로 그을러 스모키한 향기까지 내기도 한다.

▲태닌과 음식
와인에 포함된 태닌은 단백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단백질 구조가 단단한 음식들과 잘 어울리는데 오븐에서 구운 고기요리나 스튜 등과 궁합이 맞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름기가 많은 생선 요리를 먹을 때면 태닌 성분이 많은 카버네 쇼비뇽이나 시라 품종의 레드와인을 마시면 와인속의 태닌이 음식과 결합해 쇠붙이를 입에 넣은 듯한 비위 상하는 맛이 날 수가 있다. 따라서 생선요리는 화인트 와인을 추천해 주는데 굳이 레드와인을 마시겠다고 우긴다면 태닌이 적고 부드러운 멀로나 피노누아를 권하면 된다.
태닌은 동맥 경화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나쁜 콜레스테롤도 물리쳐 준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과음은 금물. 알콜 음료이므로 간에 부담을 주고 건강이 나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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