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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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인간, 값진 삶

2007-01-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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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60살이 되었다고”- 믿기지 않아 웃음이 절로 나왔던 것도 이미 몇년전의 일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청년이 될 수도 있고, 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60이면 청춘입니다”라는 말과 글들이 과연 얼마만큼 진실인지도 알게 되었다.
건강체라고 자부했던 몸의 한부분이 불편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매진해야할 일에 부닥치면 우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연말을 보내면서, 또 성큼 다가선 새해를 맞으면서는 10년이든 30년이든 덤으로 선물 받게 될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 업적을 남긴 삶도 아니었으니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을 것도 아니고, 다만 임종을 맞으면서 내 자신의 살아온 날들에 대해 한 점의 후회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친척들이 함께한 대가족 설 잔치를 끝내고 피곤을 풀겸 몇 장 남지 않은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 최인호의 ‘가족’ 제4권 ‘좋은 이웃’이다. 참사랑이라는 제목아래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다. 헌신적인 의료봉사와 부인에 향한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최인호씨의 표현을 빌리면 웬만한 일에 마음이 움직여본 일이 없다는 차돌 같은 그도 장박사의 기사를 읽고는 그 감동이 한 달 내내 가슴에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고 말한다.
의사 장기려 박사는 1950년 12월 평양에서 남하하여 40여년동안 부산에서 무료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복음병원, 녹십자병원을 세워 사랑의 인술을 실천했다.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 속 깊이 가족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불쌍한 이웃을 위해 일하는 그만큼 북에 남겨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 나는 믿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5남매를 이북에 두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아내와 서로 떨어져 산 40여년간 변하지 않았던 사랑에 대해서 그는 “결혼한지 15년 쯤 되던 어느 날, 나는 우리 부부가 정말로 참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책을 읽고 아내는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순간 나는 우리의 사랑이 육의 한계를 넘어 죽거나 헤어지더라도 영원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참사랑을 고백했고 아내도 지금까지 그 참사랑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서 아내와 만나기를 빌고 있지만 사실 나이가 팔십이 넘었으니 살아서 못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저 세상에서까지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참 인간이구나 하는 감동이 내 가슴에 울려 번져왔다. 참사랑을 훨씬 뛰어넘은 인간 완성같은 경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값진 삶이란 아무리 그 규모가 작은 삶이라 해도 철저하게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래서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닌 참사랑을 할 수 있고, 남을 돕는 봉사도 참 봉사를 하게 되고, 생각도 진실 되게, 말도 참말을 하게 되는 삶이라야 한 점의 후회없는 삶이 될 것이다.

<오경자> 전 LA 가정상담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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