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결혼식

2007-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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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탤런트 부부가 결혼 10여일만에 헤어져서 시끄러웠다. 남자가 폭행을 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신혼 집 아파트 크기, 혼수 등 돈 문제가 갈등을 불러왔다고 한다. 호화 결혼식에 호화 혼수, 호화 아파트 등 한국에서는 결혼하는데 보통 돈이 많이 드는 게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요란스러운 결혼식 풍조가 요즘에는 미국에 까지 들어와서 청첩을 하는 부모입장도 그렇고, 참석하는 하객입장도 불편해지는 경우를 본다.
언젠가 후배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해야겠는데 망설여진다고 했다. 결혼식을 호화 호텔에서 하는데 적은 부조로 참석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 갈수도, 안 갈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축복은 해주고 싶지만 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부조인 것 같다는 얘기다. 결혼식이 이렇게 되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지난해 작은 아들이 7년이란 긴 세월의 기다림을 깨고 “결혼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했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아들이 지금의 며느리와 헤어질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남편은 같은 한인, 같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며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파란 눈의 아가씨로 대신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우리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식이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다. 식장은 그들이 처음 만나 데이트한 북가주의 산악인 산장으로 이미 정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부모의 도움을 빌지 않고 자신들의 작은 예산으로 결혼식을 한다면 너무 조촐한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남의 이목도 있는데, 어쩌나.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멀리 북가주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라고 어찌 초대할 것인가.
고심 끝에 나는 결정했다. 친구들은 초대하지 않고 가족 친척과 신랑신부의 친구만 부르기로.
결혼식 이틀 전,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산장으로 향했다. 사돈 가족들과 신랑신부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작은 호텔에서 사돈들과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왔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한복을 입었고 남편은 진한 밤색의 예복을 입고 예식장으로 향했다. 예식장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와우!’하고 탄성을 질렀다. 식장은 온통 초록, 연두, 베이지 등 야생화로 장식돼 자연을 그대로 불러들인 것 같았다. 며느리의 작품이었다. 현관, 화장실 그 어느 곳도 며느리의 정성스런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순간 나는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혼자 보기는 너무 아까운 소박한 아름다움이었다. “바로 이런 게 진짜 결혼식이로구나”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돈이 아니라 정성, 허례허식이 아니라 사랑이 빛나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이틀 날 아침 며느리의 인사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미셀이에요” 똑 떨어진 한국말이었다. 오랜 세월 며느리를 기다리게 한 후회와 미안함이 가슴을 절여왔다.

에바 오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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