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할리아 잭슨

2006-1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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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바올성당의 일요일 저녁 미사음악을 하던 청년은 영성이 깊고 풍부하고 삶의 번뇌가 승화된 아름다운 미사곡을 불러서 미사의 은총을 한층 더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나오지 않아 무척 섭섭했다.
요즘 다니는 성당의 미사음악을 하는 소년은 마치 공부하라고 매일 야단을 맞는 듯한 답답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미사를 이끄는데 그 음악을 한시간이나 들으며 귀한 일요일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참 안됐다 싶고 나도 미사 하는 시간이 무척 안타깝고 지루하기만 하다.
그 소년에게 어떻게 하면 목소리가 트이고 가슴이 활짝 열린 미사음악을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마할리아 잭슨(사진)의 CD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동네교회에 새벽기도를 간 적이 있는데 들리는 기악 찬송가가 듣기에 거북하고 음악성이 낮아서 그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맞느니 차라리 새소리라도 들으며 묵상하고 싶었다. 더구나 새벽부터 방언을 하며 소리들을 지르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와 숲을 바라보며 기도한 적이 있다.
소란한 교회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고요함 중에 신의 은총을 만난다.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달력에 있는 성경이야기의 그림도 때로는 수준이하의 그림이어서 예술성의 깊이에 달한 음악이나 미술이 하나님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를 배우러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이 아주 친절한 흑인여성이었다. 영어문법은 되지만 입이 열리지 않던 내게 자꾸 질문을 던지고 관심을 보여주심으로써 처음으로 영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아주 멋쟁이였는데 마할리아 잭슨을 좋아하여 테이프를 가져다주어서 처음으로 마할리아 잭슨을 들을 수 있었고 UCLA 다닐 때 종교음악 클래스에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마할리아 잭슨은 뉴올리언스 빈민가에서 태어나 교회의 성가를 부르며 성장했고 시카고에서 활동했다. 가스펠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그녀는 250 파운드의 거구에 보랏빛 캐딜락을 타고 다녔고 금세기 최고의 목소리를 타고났다는 찬사를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산을 움직일 듯이 웅장하고 감성이 깊고 풍부하다. 단순하고 격조가 높으며 힘차다. 말년에 블루스와 세속의 음악을 부르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의 그녀는 블루스가 슬프고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며 기피했고 기쁨과 찬양으로 넘치는 성가만을 고집했고 성가만이 그녀의 삶이었다. 그녀의 성가는 남부 흑인 교회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흑인으로서 드물게 백인사회에서 공연하고 박수를 받는 그녀였지만 공연이 끝나면 흑인이라 식당에 들어갈 수도 없고 잠자리를 찾을 수도 없는 차별을 견뎌야 했다. 공연이 끝나면 과일을 먹으며 밤새 운전해서 다른 도시의 공연장에 도착하여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다는 그녀는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마틴 루터 킹의 오랜 친구로 워싱턴 행진에서 노래했고 카네기홀에서도 공연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가는 곳마다 성탄음악이 들리는데 성스럽기보다는 부산하고 상업적이다. 어딘지 더 우울하고 쓸쓸한 감이 들어서 오랜만에 글렌데일의 브랜드 라이브러리에 들렀다. 5번 프리웨이를 타고 가다가 웨스턴에서 내려 산쪽으로 가면 인도풍의 아름다운 흰색건물이 숲속에 있는데 이 도서관에서 수많은 음악, 미술 관계 서적과 비디오, CD를 빌릴 수 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나온 그녀의 CD 두장을 빌릴 수 있었다.
그녀의 성가는 진실하고 깊고 따뜻하다.
가장 인간적인 고뇌에 차 있으며 그 고뇌를 박차고 힘차게 일어나 기쁨으로 찬양한다. 그 자체가 신과의 만남인 그녀의 성가를 들으며 존재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나와 세상을 깨끗이 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만난다.
흑인들의 고난에 찬 삶이 응축되어 태어난 마할리아 잭슨의 성가를 들으며 우울한 시간이 번쩍 들어 올려지는 경험을 하며 다시 하늘과 땅에 가득한 은총을 누린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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