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

2006-1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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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섯시반만되면 2층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며느리가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사이프러스에서 글렌데일까지. 중학교 선생인 며느리는 교통체증을 피해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리 부부도 저들보다 더한 고난을 견뎌왔지만 때로는 며느리가 안쓰러워진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있어 새벽길에 두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일 없이 마음 놓고 출퇴근을 한다. 우리 내외는 일찍 초등학교 다니던 두 아들과 미국으로 이민 와서는 큰 성공보다는 가족에다 도덕적 가치를 두어왔고 그런 까닭에 손자들에게도 소명 같은 사명감을 느껴온 터이다.
그러나 미장원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아내더러 늘그막에 며느리 시집 사느라고 고생이 많다 하고는 손자손녀들을 다 키워주고는 노인 APT로 나와 살게 된 서운한 감정을 무념처럼 드러내 보였다. 어려웠던 시절 3대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면서 가족간의 헌신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우리 세대의 도덕적 관념주의가 자식들의 핵가족 실용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식들의 지독한 이기적 편의에 따라 용도 폐기되고 있는 것이다.
양로병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는 미세스 김은 주말만 되면 노인들이 혹여나 자식들이 찾아 올까봐 기다리는 애틋한 모습이 안타깝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속내를 드러내 보일만큼 애틋해 하는 것은 자신의 배안에서 길러낸 자식들에 대한 본능적인 모성애 때문인 같다.
어느 할머니의 자녀들은 주말마다 번갈아가며 꼭 찾아와 효자효부로 이름나 있지만 대개는 한 달에 한번쯤 오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발길을 끊는가 하면 더러는 병원에 맡기고는 아예 연락마저 끊어버린다고 한다.
미세스 김이 맡아 돌보는 87세된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바깥에 나오면 한없이 먼 하늘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풀어진 눈길은 허공에 머물고 인생에 지친 권태가 물씬 풍긴다. 자식들이 어쩌다 찾아와도 말은 잊은 지 오래고 오히려 미세스 김의 손을 꼭 잡고 육친 같은 정을 보인다. 때로는 노인에게 배어 있는 허무의 그늘이 너무 짙어 덩달아 인생의 허망함을 느낀다고 한다.
자식을 낳아 가슴으로 기르고도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들의 무관심에 숙명 같은 고독을 홀로 감당치 못해 정과 한 사이를 오가며 자살에 이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인생의 종착역 같은 독거 APT나 양로병원에서 자식들의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앓으며 벼랑 끝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간의 사랑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흘러 내려가 헌신과 희생으로 승화되고 자식의 부모에 대한 보은적 윤리행위는 효행으로 구체화된다.
세모에는 더 고독해지는 노부모들을 찾아가 비록 속에 없는 말일지라도 “아버지, 어머님 사랑해요”하고 건네는 것이 자식들의 도리가 아닐까. 이런 최소한의 도리마저도 인색한 배은망덕한 자식들에게 “너희들도 인간이니?”하고 묻고 싶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남진식/ 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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