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첫 여성행장 시대를 맞아

2006-12-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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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일이다. 신문 일면을 장식한 여성행장의 소식은 한줄기 소나기처럼, 아니 신임행장의 시원한 인상만큼이나 반가웠다. 그만큼 상징적인 인사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행장에는 여자가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가계부를 적으며 살림을 꾸리는 아내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고, 여성 특유의 성격이 야무지게 돈을 관리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알뜰하게 아끼고, 과감하게 아량을 베푸는 데에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냥 여성행장을 반기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마시길.
이곳, 햇살이 축복처럼 눈부신 로스앤젤레스는 특히 여성들의 천국이다. 나가서 일할 곳이 여성들에게 많이 열려 있고 실제로 여자들이 직업을 갖고 가계를 부담하는 가정이 많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한가하게 골프를 즐기는 행복남도 많고 여성파워에 눌러 기를 못 펴는 소심남도 흔한 곳이다. 즉 여자라고 못해낼 일이 없다는 말이다.
먼 옛날 그 어려웠던 시절, 고국 땅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 온 이민 1세대를 생각하면 이제 이곳에서 교육받은 1.5세들이 한인사회의 중요 역할을 분담한다는 것은 부모들의 땀의 결실이며 핑크빛 미래라고 생각한다. 한때 지식인 중에는 한인들을 엽전이라고 비웃고, 외면하고, 미국 주류사회에 파고드는 것에만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인이 100만이 되어가는 이 사회가 아직도 조직적으로 허술하고 수많은 이민자들을 대변할 튼실한 단체가 턱없이 부족해서 한인들은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를 리드하는 그룹은 전체 인구의 0.01%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이민 온 지식층들은 한인사회에 고개 내미는 것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었고 백인사회의 핵심 멤버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백인도, 한인도 아닌 어정쩡한 고상함을 유지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1세대들은 이루지 못했으나 영어권의 자녀들이 미 주류사회에 끼는 것을 그들 삶의 큰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참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인사회를 생각할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이번에 한인회장 선거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셨다. 그 구태의연한 선거방식, 낯부끄러운 유세현장, 후보들에게 몇 푼이라도 얻으려고 줄을 서던 유권자들, 협박, 비방…, 왜 한인사회는 아직도 그렇게 허기지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서툰가를 생각하면 한인사회를 외면했던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원망스러워진다. 나는 차라리 한인들 그 한가운데 뛰어들어 뭐라도 해보겠다는 회장 후보들의 참여의식이 고마웠다.
한인사회는 변하고 있다. 아니 더욱 더 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걸려 있고, 미래가 걸려 있다. 리더가 존재해야 하고 그동안의 편견을 물갈이할 일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파격적인 1.5세 여성행장 인사를 그 첫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김수현> 작가·부동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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