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센스 있는 여인

2006-11-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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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겁고 뭔가 끈끈한 기분을 덜어내고 싶어질 때, 나는 으레 집 가까이에 있는 피트니스 헬스클럽의 사우나 실을 찾아간다. 그날도 오후 시간에 사우나실에 들어서니 50대 중반반 을 넘겨 보이는 한국 여자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살이 찌기 시작한 지방질을 빼내기 위해 쭉 둘러러 앉아 땀을 흘려대며 이야기의 꽃을 한참 피우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앉아 있으려니 자연 내 귀가 그들의 대화를 듣는 쪽으로 바짝 세워지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처럼 느닷없이 한 여인이 세상에 영어를 몰라도 그렇지 한국 여자가 이를 닦으면서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고 불쾌해서 “이 안에서는 양치질을 하면 안된다”고 일러주니까 고맙다는 인사는 고사하고 심기가 상했는지 적의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휑하니 나가더라는 것이다. 여인의 흥분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여자가 말을 받으며. 꼴불견이 어디 하나 둘 인 세상이냐고, 요 며칠전에는 젊은 여자가 골프를 시작했는지 이 안에서 폼을 잡고 골프치는 연습을 하느라고 팔을 휘두르다가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대는 해프닝이 잠시 벌어졌는데 보는 사람 민망한 광경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 둘이 아닌 꼴불견의 험담을 들으며 나는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은사님의 말씀과 피천득 선생의 ‘구원의 여인상’이라는 수필이 동시에 생각 났다. 졸업을 앞두고 사은회로 모인 자리에서 노 교수님은 졸업생들에게 센스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 하셨다.
또 피천득 선생의 수필 ‘구원의 여인상’을 읽어보면 많은 이상적인 여인상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녀는 찻잔을 윤기나게 닦을 줄도 알지만 이 빠진 접시를 버릴 줄도 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여인이 구원의 여인일 수 있다는 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찻잔을 윤기나게 닦을 줄 아는 여인은 근면과 성실과 청결한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빠진 접시를 버릴 줄 안다는 것은 훌륭한 분별력과 결단력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험담에 물린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해야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분별력이 부족한 탓으로 타인에게 유쾌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비위를 상하게 하는 꼴불견이 된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미모를 지닌 자라도 분별력이 모자라면 그 아름다움이 주책 없이 보이고,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박식한 지식이 있다해도 분별력이 모자라면 오만과 아집에 빠진다. 재력을 가진 사람이 분별력이 모자라면 우쭐대는 졸부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분별력은 자기 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 속에서 꼴불견의 험담에서 피해 서는 여인은 “찻잔을 윤기 나게 닦을 줄 도 알고, 이 빠진 접시도 버릴 줄도 아는” 슬기로운 분별력과 지혜의 진주가 숨겨져 있는 센스있는 여자가 아닌가 싶다.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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