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를 위하여

2006-11-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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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은 책장 페이지마다
하얀 책장 공백마다
돌과 피와 종이와 잿가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정글에도 사막에도
새 둥지 위에 개나리 위에
내 어린 때의 메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의 신비스러움 위에
낮의 하얀 빵조각 위에
약혼하였던 시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하늘빛 헝겊조각 위에
태양이 이끼낀 연못 위에
달빛이 흐르는 호수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 위에
병사의 총칼 위에
임금의 왕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먼동 트는 새벽입김에
바다 위에 모든 배 위에
미친 듯 불 뿜는 산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뭉게구름의 하얀 거품 위에
소나기의 땀방울 위에
굵다란 김 빠진 빗방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빛나는 모든 형태 위에
모든 빛깔의 종이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이 깬 오솔길 위에
환히 뻗은 한길 위에
넘쳐있는 광장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나의 피신처 위에
무너진 나의 등대들 위에
권태를 주는 담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이 없는 곧은 마음씨 위에
발가벗은 이 고독 위에
죽음의 이 행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의 위력으로
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고
너를 이름짓기 위해 있으니
오 ‘자유여’!
폴 엘뤼아르(1895∼1952) ‘자유’

암울한 6년이었다. 60만의 이라크인이 죽었고 3,000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들이 죽었고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로 이라크 전을 시작했고 부통령의 회사는 거액을 벌어들였다.
포로들을 고문할 수 있는 악법이 시행되었고 불법체류자를 돕는 사람은 형사 처벌될 수 있게 되었다.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맞았다. 호세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유엔에서 부시를 악마라고 부를 지경으로 국가적 위신이 떨어졌던 미국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한 장의 투표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싸운 그 귀중한 한 표를 위해 나도 투표를 했고, 민주당이 선거에 압승한 그날 밤 나는 춤을 출 듯이 기뻤다.
에이브러험 링컨, 마틴 루터 킹, 말콤 X의 위대한 정신이 살아있는 미국의 풀뿌리 정신, 그 시민정신에 대한 희망과 신뢰가 살아났다.
이라크에서의 철수, 도청방지, 최저임금 인상, 이민법 개정, 의료보험 개혁 등 미국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영혼의 자유이던 정치적 자유이던 자유를 향한 고뇌는 아름답다. 특히 타자의 보다나은 삶을 위한 고뇌는 더욱 아름답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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