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졸레 누보’의 계절이 돌아왔다

2006-11-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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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 포도주… 떫지않고 신선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0시에 전세계 동시 출시

지난해 여름쯤이었던가, 한국서 온지 얼마 안된 한 지인의 초청을 받았는데 신선하고 좋은 와인이 있으니 먹어보자며 캐비넷 깊숙이 보관하고 있다는 보졸레 누보를 꺼내는 것이었다. 한해 전인 2004년 11월 출시된 ‘보졸레 빌라쥬’였다. 캐비닛에는 10병쯤 더 있어 보였다. 귀한 친구가 올때마다 꺼내 먹는다는 지인의 설명을 곁들여가며 마셔본 때늦은 보졸레 누보의 맛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았다.
보졸레 누보 출시가 눈앞에 다가왔다.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0시(올해는 11월16일)에 일제히 선보이는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의 보졸레 지역에서 그해 9월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 포도주’다. 그러니까 숙성 기간이 1~2개월에 그치는 앳된 포도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프랑스는 이듬해 4월이 지나면 더 이상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보졸레 누보는 겨울에만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 ‘한해살이’ 와인인 셈이다.
오크통 속에서 4~5년을 발효와 숙성을 거듭하며 느긋하게 성숙해져 가는 일반 포도주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태닌 성분이 적어 떫지 않은 데다가 달고 신선해 초보자들도 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더군다나 와인잔을 흔들고 냄새를 맡으며 맛을 음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격식에 익숙지 않는 주당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마켓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8~9달러 정도 한다니 유행을 따라 한번쯤 고기 구워놓고 와인잔 기울이며 깊어가는 겨울밤의 운치를 즐겨봄직 하다.
와인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이 보졸레 누보가 요즘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2000년 들어 가히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와인이었는데 어찌 그리됐는지 모르겠다. 한국발 보도들에 따르면 보졸레 누보의 주요 주조업자 조르주 뒤뵈프가 지난 7월 서로 다른 와인을 불법으로 섞은 혐의로 3만유로(약 3만8,000여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아 한국의 많은 와인 수입 업체들이 수입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속사정은 수입업자들이 항공 수송료까지 붙여 비싸게 팔았던 보졸레 누보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병에 20~30달러에 팔리는 와인치고는 그 가치가 없음을 눈치챈 것이다. 프랑스에서 병당 6~7달러에 선술집 등에서 연말연시 맛보기로 팔리는 와인을 한국서는 비행기로 긴급 공수까지 해가며 유행처럼 먹어댔다.
LA에서 와인 수입업자들이 주최하는 보졸레 누보 시음회가 16일 열린다. 긴급히 공수해온 햇 포도주의 맛을 보려는 와인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기에 충분할 것이다. 어쨌든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이는 보졸레 누보가 그해의 농사를 가름하게 잣대가 된다니 내일 출시되는 첫 작품의 맛이 제법 기대된다.

<보졸레 누보란>

4~6주만 숙성 격식없이 즐겨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남쪽의 론주에 있는 보졸레 지방에서 해마다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바로 파는 햇포도주. 보졸레 지방에서 재배되는 레드와인용 가메(Gamay) 품종이 거의 대부분으로 포도알째 통에 담아 1주일정도 발효시킨 뒤 4~6주간 숙성시킨다. 가메 품종은 껍질이 두껍지 않고 태닌이 적으며 과일향이 풍부하다. 태닌이 적어 숙성이 빨리되므로 깊은 맛은 없지만 향이 짙고 쓴맛이 덜하다. ‘보졸레’와 ‘보졸레 빌라쥬’에서만 생산되는 제품을 사용한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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