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게 이렇습니다 다락방의 트로피들

2006-11-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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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섬기게 된 교회가 샌로렌조에 있는 남침례교회이다. 1875년에 지어진 우리교회 건물은 이스트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건물이라 한다. 교회 옆에 목사관이 딸려있다. 목사로서 교인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막상 이사를 가려고 생각하니 숲속의 우리 집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집을 사랑한다.
수 십년 동안 살던 정든 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장 사랑하는 것들은 느슨하게 쥐면서 살아야 한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젠 이 집을 지나쳐서 다른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 집은 십오년 동안 한곳에서 살면서 네 식구가 끌어 들여온 소유품들을 담고 있다. 집안 가득한 물건들을 들어 옮겨야 한다. 소파나 식탁처럼 큰 가구들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어려운 물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쉬운 이삿짐이다. 서너 명의 남자들이 큰 소파를 들어 짐차에 실어 새집으로 옮겨와서 우리가 지적한 곳에 놓아주면 끝이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소품들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이삿짐이다. 첫째 이 물건을 간직할 것인지, 남을 줄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릴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유품이 새집으로 옮겨 진 후에는 어디에다 그것을 배치하여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삿짐을 꾸리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갔다. 수백 가지의 자질구레한 살림과 잡동사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쇼핑백 속에, 가방 속에 상자 속에 책장 속에 아내의 소유품, 나의 소유품, 그리고 두 아들이 한때 보물처럼 간직한 소중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마치 다락방은 우리식구들의 소유품들의 안식처 같다.
전통적인 기독교 견해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위치한 곳을 ‘변방지역’이라고 부른다. 우리 집 다락방이 마치 이 변방지역 같다. 우리 집 주거 공간에서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쓸모 없어 버려지지 못한 우리식구들의 소유물이 안식하는 곳이다. 나는 다락방 짐을 정리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에 쓴 논문들 (보관한다), 고장난 전화기 (버린다), 헌 책들 (굿윌에 기부한다)을 정돈했다.
여기 저기에 내 팽개쳐 진 트로피들과 상패들을 상자에 담는다. 오로지 이사를 갈 때 한번씩 보는 물건들이다. 고등학생시절 트랙선수였을 때 받았던 상패들, 교회에서 보이스카웃에서 운동경기에서 받은 트로피들과 상장들이 보인다. 학교에서 받은 상장들과 증서들도 보인다.
왜 나는 이러한 고물들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트로피들은 플래스틱에 유치한 금색 깔을 입힌 싸구려 물건들이다. 이러한 물건들로 우리 집 벽을 장식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나는 이런 것들을 이 변방지역에 간직하고 있을까? 아마 이것들이 어쩌면 나의 과거를 보증하여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기에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지만, 이것들은 나를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장하여 준다는 생각에 버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 올 경우를 생각하여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여기 보라. 내가 1978년에 군대에서 받은 상장이다” 라고 증거 할 수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사실은 이 금색을 입힌 플래스틱 트로피에 어느 누가 관심을 보이기나 할까.
오래된 찬송가 “나의 모든 트로피를 내려놓고”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젊었을 때 나는 이 구절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한다. 다락방에 먼지 낀 트로피처럼 나에게는 우리 집이 트로피였다. 이제는 오래된 트로피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트로피를 받기 위해 이삿짐을 싼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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