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년 빈티지 벌써 나왔네

2006-11-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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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칠레·남아공 등 남반구선 연초에 포도 수확

보름 후면 2006년산 햇와인 보졸레 누보가 출시된다.
바로 두달전 나무에서 딴 포도로 담근 가장 어린 와인, 풋과일 향기가 풀풀 나는 새 와인이다. 그런데 이 보졸레 누보보다도 먼저 2006년 빈티지를 달고 나오는 와인이 있다는 사실, 아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다.
남아공 산 셰닌 블랑, 뉴질랜드 산 소비뇽 블랑, 칠레 산 샤도네, 호주와 아르헨티나 산 로제 등이 지금 와인샵 선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2006년산 와인들, 모두 지구 남반구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들이다.
보졸레 누보처럼 최단기 양조과정을 거쳐 나오는 햇와인이 아니라, 제대로 충분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와인을 수확된 그 해에 마실 수 있는 이유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등 북반구에서는 가을 수확기가 9월과 10월이지만 남반구의 나라들은 수확기가 매년 초에 돌아오기 때문에 이때 포도를 수확하여 4월 중순에 양조가 끝나면 빠르게는 6월에 새 와인을 마셔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뉴질랜드 말보로 산 2006 바비치(Babich) 소비뇽 블랑의 경우 4월10일에 양조가 끝나 6월26일 미국으로의 첫 운송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렇게 빠른 와인들은 모두 화이트와 로제뿐인데 그 이유는 화이트 와인의 양조과정이 짧기 때문이다. 카버네 소비뇽 등 레드 와인은 발효, 오크통 숙성, 병입, 저장 등의 과정이 화이트보다 길어서 2~3년은 지나야 마켓에 등장하지만 화이트 와인은 불과 6개월만에도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지구 반대편의 대륙에서 바로 몇달전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던 포도로 빚은 와인을 맛볼 수 있다니, 이런 일은 10년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화이트·로제는 6, 7월께 미국서도 맛볼 수 있어


그 10년동안 전세계 와인업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와인 생산과 소비의 중심 세력이 유럽이라는 ‘구세계’에서 미국을 비롯한 ‘신세계’로 급속하게 퍼져나간 것이다.
신세계의 국가들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반구 국가들(칠레,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싸고 질좋은 와인들이 날로 증가하는 전세계 와인애호가들의 수요에 발맞춰 빠른 시간 내에 와인시장을 파고들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5년전만 해도 미국의 와인 시장은 캘리포니아, 이탈리아, 프랑스 산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판도가 완전히 달라져 남반구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국가마다 각 테루아에 맞는 품종에 주력함으로써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이라던가, 아르헨티나 말벡, 호주 산 시라즈, 칠레 산 카메네르와 카버네 소비뇽, 남아공 샤도네 등 각자 품질 좋은 대표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맛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유럽산 와인은 레이블이 어렵고 복잡한데 반해 신세계 와인들은 레이블을 쉽고 단순하게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좋은 것이다. 전통과 역사가 서린 깊은 맛을 내는 구세계 와인과 젊고 솔직하며 발랄한 맛을 가진 신세계 와인을 한 자리에 앉아서도 다양하게 마셔볼 수 있으니, 세상은 넓고 마실 와인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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